오크카세

셰프의 철학을 팝니다

by 김경훈

허영심이 빚어낸 줄서기


왕국 수도의 가장 화려한 귀족 거리. 번쩍이는 대리석 건물들 사이로 뜬금없이 다 쓰러져가는 낡은 통나무 헛간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간판조차 없는 이 헛간의 이름은 야만. 최근 수도의 상류층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자 찬사의 대상이 된 초고가 식당이었다.


이곳은 메뉴판이 없었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오크 요리사 고르돈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내어주는 음식을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이른바 오크카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식사 한 끼의 가격은 무려 금화 백 닢. 평민 가족이 십 년을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거액이었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예약 대기만 반년이 넘었고, 손님은 주방장 고르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식사 내내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했다. 귀족들은 헛간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숨결이라며 찬양했고,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엉덩이가 배기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세속의 편리함을 벗어던지는 수행의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오늘 저녁의 예약자는 왕국에서 가장 허영심이 많기로 소문난 청년 귀족 바론 남작과 그의 연인 세리아 영애였다. 바론 남작은 반년 전부터 뒷돈을 써가며 간신히 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세리아에게 자신의 엄청난 재력과 앞서가는 미각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헛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명이라고는 밀랍 초 하나가 전부인 어두컴컴한 실내가 나타났다. 눅눅한 흙냄새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리아 영애는 무심코 코를 막으려 했지만, 바론 남작이 황급히 그녀의 손을 내렸다.


세리아, 조심하시오. 고르돈 셰프님은 후각에 아주 예민하십니다. 이 향기는 대지의 태반에서 숙성된 냄새라고 하더군요. 코를 막는 것은 셰프의 철학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세리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화려한 실크 드레스가 먼지투성이 나무 의자에 닿았지만, 그녀 역시 교양 없는 여자로 보이기 싫어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셰프의 등장과 첫 번째 코스


거대한 도마 뒤편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키가 이 미터를 훌쩍 넘고, 팔뚝 굵기가 사람의 허리통만한 오크 고르돈이 나타났다. 그는 피와 얼룩이 잔뜩 묻은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손에는 녹슨 커다란 식칼이 들려 있었다.


고르돈은 손님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눈동자로 바론과 세리아를 쓱 훑어보더니, 콧김을 씩 내뿜었다. 그 콧김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훅 풍겨왔다. 바론은 그 압도적인 야성미에 감탄하며 작게 박수를 쳤다.


역시, 첫인상부터 타협을 모르는 장인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소?


고르돈은 도마 위에 흙이 잔뜩 묻은 시커먼 돌멩이 하나를 툭 던졌다. 그리고 그 돌멩이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하고 끈적이는 액체를 딱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것이 첫 번째 코스였다.


먹어라.


고르돈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바론 남작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오, 이것이 그 유명한 아뮤즈 부쉬로군요. 이 액체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셰프님?


이슬이다. 고블린 서식지 근처 늪지대에서 새벽에만 맺히는 독거미줄의 이슬.


세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늪지대? 고블린? 독거미줄? 평소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을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바론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끈적이는 액체를 혀끝으로 핥았다.


아, 훌륭합니다. 입안에 퍼지는 이 알싸하고 떫은맛. 늪지대의 습한 공기가 혀를 타고 뇌로 직접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세리아, 당신도 어서 맛보시오. 이것이 바로 날것의 생명력 아니겠소?


세리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돌멩이를 받아 들고, 눈을 질끈 감은 채 혀를 대었다. 시큼하고, 퀴퀴하며, 약간의 썩은 내장 맛이 났다. 그녀의 위장이 뒤틀리며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눈앞에서 식칼을 만지작거리는 거대한 오크 셰프와, 감탄을 연발하는 애인 앞에서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네, 네. 정말 독특하고 깊은 맛이네요. 생전 처음 겪어보는 풍미예요.


세리아는 눈물을 핑 돌며 억지로 삼켰다. 바론은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고 착각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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