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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09. 2022

아저씨 셋이 반차휴가 내고 차박 캠핑하는 방법

  모교 동기 셋이 거사일을 정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아웃도어 라이프에 심취해있다. 다른 둘은 오래전 잠시 귀의했다 중단한 상태다. 친구 셋이 가는 건 가족 동반과는 또 다른 장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이날 저날 중에 하루 골라서 확 다녀오자, 내가 먼저 뇌관을 건드렸다. 친구 둘도 화끈하다. 이날이 좋겠다! 콜! 친구는 닮는다. 아니, 닮은 것들끼리 친구가 된다. 아, 각자 다양한 논리와 명분으로 어부인들의 허락을 구했던 건 당연하다.


  소풍 앞둔 초등생의 심리상태. 소풍 말고 하루 이틀 자고 오는 ‘극기훈련’을 기다리는 심정에 가깝달까. 그 시절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는 왜들 그렇게 자라나는 새싹들을 ‘극기’와 ‘훈련’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너희들 여기 놀러 온 것 아니다!”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해병대 팔각모 쓴 조교 아저씨들에게 아랑곳없이 우리 모두는 놀러 온 입장이었다. 딱 그런 설렘과 기대로 더디 가는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살면서 대단한 것 아니어도 이렇게 손꼽아 기다리는 날짜가 수시로 주어진다면 제법 살만한 인생이겠다, 싶었다.


  내일 준비할 거 뭐 있어? 톡방에서 친구가 묻는다. 없어, 내가 답한다. 배 덮을 이불이나 침낭 하고 각자 세면도구 등 소지품, 그리고 설레는 마음, 그거면 준비 완료다. 나머지는 다 나한테 있다. 이번에는 대단한 거실형 텐트 같은 것 말고 간단하게 SUV 자가용에 연결 설치하는 차박 전용 텐트를 가져간다. 랜턴, 버너, 침낭, 화로대 등 온갖 소품 들어있는 캠핑용 수납 박스와 테이블, 의자 등등은 트렁크에 기본으로 실려 있다. 캠핑의 백미, 모닥불을 빠뜨릴 수 없어서 마른 장작은 미리 택배로 받아놓았다. 캠핑장에서도 살 수 있지만 그게 더 싸고 품질도 보장할 수 있다. 집에서 미리 바짝 말려서 가져가면 연기 없이 예쁘게 잘 탄다.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예정은 그렇다. 내일은 전철 말고 차를 끌고 출근한다. 당연한 말씀, 내 차에 다 있고 한 차로 이동한다. 회사 지하주차장 요금과 인근 유료 주차장 요금을 비교한다. 시간제로 내는 회사 주차장이나 종일권을 끊어야 하는 외부 주차장이나 가격 차이가 없다. 주차는 회사로. 따라서 우리의 집결지도 회사. 각자 회사에 금요일 오후 반차휴가를 내고 낮 1시에 집결. 점심은 만나기 전에 알아서. 간단한 아점을 추천. 왜냐 캠핑장 도착해서 텐트 설치 마치면 서너 시 사이. 그때부터 불 피우고 먹고 마실 거니까. 목적지는 경기도 남양주. 전에 몇 번 다녀온, 사이트 넓고 앞에 개울 흐르는 캠핑장. 최소 보름 전 예약은 필수. 동선 중에 대형 마트에 들러서 고기, 채소, 술, 물, 기타 각종 먹을거리 구입. 알았지 친구들? 아, 회사에 반차휴가 상신 잊지 말도록.


  칼 같은 시간 약속. 정확히 1시에 모여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간다. 북부 간선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뒷자리 앉은 친구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다. 여긴 미숙이(가명) 집, 저긴 영숙이(가명) 집.. 이건 뭐 옛 여친 추억 투어네! 그러면서 자긴 총각 시절 연애 경험이 지극히 일천하단다. 그래, 오늘 밤까지만 유효한 우리 셋만 아는 얘기로 ㅋㅋ. 나머지는 계획대로 착착 순항 중. 지나치게 상세한 계획은 즉흥적 재미를 흐리지만 너무 흐리멍덩한 플래닝은 여행 자체를 망친다. 계획대로 마트에 들러서 계산을 치르는데 할인 행사가 많다. 덕분에 싼값에 식음료 구매 완료. 야, 우리 셋이 하니까 뭐가 막 되려나 보다, 공연한 초자연적 인과를 갖다 붙인다.


  오후 세 시, 캠핑장 도착. 주인장께 아저씨 셋이 왔는데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얌전히 놀다 가겠다고 약조한다. 주인장 말씀하시길, 오늘 손님 많지 않아서 편하게 놀다 가라신다. 굿 뉴스. 요즘은 성인 2명에 미성년 자녀까지 가족 단위로만 투숙객을 받는 캠핑장이 많다. 그래야 사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낮으니까. 우리처럼 성인 세 명 이상이 이용할 경우는 미리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물가 널찍한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차를 몰아 한쪽에 댄다. 텐트부터 친다. 친구 둘이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얘들아, 일단 짐부터 다 내릴까. SUV 트렁크를 연 상태로 차박 전용 텐트를 골무처럼 씌운다. 텐트가 벗겨지지 않게 뒷바퀴 펜더, 루프 바에 스트랩을 채운다. 타프(그늘막)를 설치한다. 차 지붕 뒤쪽에 길게 그늘막을 연결하는 개념이다. 양쪽 루프 바에 스트랩을 걸면 타프 한 면을 공중에 띄운 셈이다. 타프 반대면은 폴대 두 개를 써서 띄워야 한다. 폴대가 서려면 땅에 팩을 박아야 한다. 망치질에 열중하려니 땀방울이 눈에 들어와 시리다. 노동의 독점이 미안했는지 친구가 망치를 빼앗아 든다. 손목 스냅이 아직 어색하다. 망치 머리에 힘이 실리지 않아 팩이 잘 안 들어간다. 파이팅!


  타프까지 설치했다. 타프 한쪽 면, 차 엉덩이에서 가장 먼 곳에 사이드 월을 연결한다. 바람도 막아주고 아늑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텐트와 타프는 끝. 누워서 잘 수 있게 차 안을 소위 평탄화한다. 뒷좌석 등받이를 접어 평평하게 만든다. 내 오래된 SUV는 조금의 경사도 없이 이른바 풀 플랫(Full flat)이 가능하다. 애정이 식지 않는 이유다. 매트리스를 펼쳐 공기를 채운다. 차 안에서 어른 셋이 같이 자기엔 비좁다. 한 사람은 밖에서 잔다. 그것 때문에 1~2인용 원터치 팝업 텐트도 실어 왔다. 자, 누가 밖에서 잘래, 가위 바위 보!


  숙영지 조성 완료 시간 현재 십육 시 삼십 분. 초심자 둘과 한 시간 반 만에 설치 완료면 상당히 양호하다. 역시 숙련된 조교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자평한다. 캠핑 박스 두 개와 보조 테이블이 오늘의 식탁이 된다. 의자는 평소 우리 세 식구가 쓰던 것 세 개. 숯에 불부터 붙입시다. 화로대를 조립해서 바닥에 둔다. 바비큐 숯 한 봉지를 까서 털어 넣는다. 캠핑 박스에서 토치를 꺼내 부탄가스와 연결한다. 점화! 불꽃을 숯에 가져가려는데 친구 하나가 관심을 보인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어어. 수업 태도가 적극적인 학생은 언제 봐도 예쁘다.


  숯에 불이 붙었다. 석쇠 위에 마트서 사온 큼지막한 쇠고기 등심 한 덩이를 올린다. 구석에 소시지도 눕힌다. 술은 뭐부터 먹을래? 스테이크엔 레드 와인이지. 똘똘똘똘. 캠핑용 플라스틱 잔에 와인을 따른다. 짠! 유리잔이 아니라 둔탁한 충격음뿐이지만 구색은 갖췄으니 기분이 업! 잔칫상에 풍악이 빠질 수 없다. 음악은 우리 X세대 노래인 90년대 것으로. 마침 신해철 형님의 「도시인」이 재생된다.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아~무런 말 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불과 몇 시간 전 오늘 아침까지 우리 세 사람의 모습, 지금은 도시인 아닌 말 그대로 자연인!


  안주를 바꿔 2차 기분을 낸다. 장소만 옮기지 않을 뿐이다. 잦아든 숯불 위에 왕새우를 올린다. 해물 안주에는 화이트 와인. 술과 음식의 조화, 마리아주(mariage)가 별건가. 그때그때 어울리는 술 꺼내 곁들이면 그게 마리아주지. 이래서 술을 섞어 마시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숙취는 불가피하다. 어포와 과자도 꺼낸다. 마트서 골고루 담아온 캔맥주도 등장한다. 난 라거 마실래, 넌 에일, 너는 아무거나?


  이곳 캠핑장의 장점 중 하나, 편의점이 울타리 너머에 있다는 것. 마침 술이며 음식이 똑 떨어졌다. 물도 버릴 겸 셋이 같이 이동해서 다녀오기로 한다. 이쯤에서 아내에게 생존 확인 전화. “어, 부인 나 아까 친구들이랑 캠핑장 도착해서 지금 저녁 먹고 있는 중.” “어, 나도 아이랑 치킨 시켜서 기다리는 중, 잘 있다 오시오.” 쏘 쿨. 편의점 냉장고에 든 진짜로 시원한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재충전해온다. 다시 우리 차박 텐트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캠프 파이어다. 굳이 차에 실어온 나무 장작이 진가를 발휘할 때다. 가족 캠핑이었으면 늘 그렇듯 내가 우리 식구 화부다. 오늘은 친구가 봉사를 자청한다. 나야 땡큐지. 토치 다루는 게 제법 능숙해졌다. 뭐든지 부딪쳐봐야 알고 해 봐야 는다. 다 좋은데 장작 너무 많이 쌓았어, 이러다 우리 다 죽어 ㅋㅋ. 다행히 가까운 데 다른 팀 텐트가 없다. 스피커 볼륨을 살짝만 키운다. 이승환, 윤종신, 신승훈, 김동률부터 동물원, 여행스케치, 시인과 촌장, 푸른하늘까지. 나와 친구 둘, 우리의 젊은 날 정서적 허기를 달래주던 명곡들이 초여름 밤과 모닥불 사이를 채운다. 광석이 형님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타 아르페지오 주법 전주가 시작될 때는 미지근해진 맥주 캔을 자동 반사로 부딪쳤다. 장작불 노란빛과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조화롭다.


  참 많은 소재와 주제의 얘기가 들락거렸다. 어쩌다 보니 ‘운명론’과 ‘결정론’까지 거론하게 되었다. 셋 다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남들이 들으면 술 마시면서 뭐 저런 얘기를 한대, 싶은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려 즐기고 덤빈다. 한참 친구의 철학 강론을 듣다가 손을 번쩍 든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그런 거란 말이지? 운명론은 말 그대로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뭘 어떻게 해봐야 별 수 없다, 이런 거고 결정론은 결과는 어차피 나와 있으니 아무렇게나 해봐도 나쁘지 않다. 두 사조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 묘하게 다른 뉘앙스네. 어차피 정해진 피날레라면 난 운명론보단 결정론!” 그런 의미에서 다음 곡은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새벽 두 시가 다 돼간다. 셋이 나란히 칫솔 입에 물가 수돗가 앞으로. 해 있을 때 정한 결과에 따라 나와 친구 하나는 차에서, 다른 친구는 작은 텐트에서 취침. 잡시다, 잘 자! 술에 취한 건지, 음악에 취한 건지, 아니면 밤에 취한 건지. 잠이 쏟아진다.


  기상! 해체는 설치의 역순. 우리 집 세 식구 캠핑 스타일이 그렇다. 캠핑장에서 보면 어떤 집은 철수하는 날 아침에도 커피에 브런치까지, 여유만만인 데도 많다. 우리 세 식구는 눈 뜨면 바로 철수 시작이다. 차 막히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서 나머지 휴일을 누려야 한다. 게다가 오늘은 세 가정 엄마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상황, 지체할 수 없다. 숙련된 교관의 리드에 따라 훈병의 움직임도 일사불란하다. 아니 온 듯 치우고 가는 것이 야영의 불문율. 방금 전까지 하룻밤 보금자리였던 곳에 덩그러니 빈 공간만 남은 걸 보노라면 엊저녁 즐거웠던 시간이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세 사람 사는 집이 다 다르다. 중간 어디 전철역쯤에서 친구 둘을 내려준다. 운전 조심하고, 그래 즐거웠어, 또 봅시다. 집에 도착해보니 친구 둘이 메신저에 각각 귀가 완료를 알려왔다. 나도 도착, 푹 쉬고 내일 출근 잘들 하시고.


  다음날 캠핑 메이트가 된 친구 하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친구들 실시간 사진이야, 다들 콧구멍 한 번씩 찔러봐야겠어.” 사진에 빨간 줄 두 개가 선명한 진단키트가 보인다. 저런, 어제 차박 캠핑 다녀와서 컨디션 회복이 영 안 된다더니 뒤늦게 코로나에 걸린 거였구나. 얼른 집 앞 편의점에서 진단키트를 사 왔다. 증상은 딱히 없지만 찜찜하니까. 면봉을 깊숙이 코에 찔러 검사를 해본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 다른 친구 하나도 역시 음성.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눈 건 맞지만 아무래도 대자연 속에 작은 점으로 존재한 덕에 비말 전파가 안 된 듯하다. 역시 친구의 컨디션 난조는 캠핑의 여파가 아닌 감염병의 잘못인 걸로. 그런고로 캠핑은 아무 잘못이 없는 걸로.


  출근해서 캠핑 회비를 정산한다. 캠핑장 이용료에 장작 구입비, 마트 식음료, 추가로 편의점 다녀온 것, 끝으로 다음 날 아침 귀경길에 순댓국 세 그릇 사 먹은 것까지. 유류비와 톨비, 운전 수고료, 장비 대여료, 무엇보다 캠핑 레슨비와 참가비는 너그럽게 회비에서 빼기로 한다. 다 더하고 빼서 머릿수로 나누니 고작 몇 만 원. 십만 원도 채 안 되는 금액이다. 친구들, 우리 어제 먹고 마시고 다녀온 거 겨우 이만큼씩 들었네, 역시 싸다 싸, 뭐니 뭐니 해도 캠핑만 한 레저가 없으이. 그러므로 우리 9월쯤에 또 가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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