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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05. 2020

다시 또 도원결의

  불금의 저녁, 전 직장 선후배 각 1인과 나 포함 셋이 뭉쳤다. ‘전 직장’이란 낱말의 온도도 이제 많이 식어버렸다. 그 회사를 떠나 지금 자리로 옮겨 온지도 햇수로 십 년 째다. 선배도 몇 년 전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다. 이제는 셋 중 후배만 그 회사를 지키고 있다. 세 사람 일터와 사는 데가 모두 다르다. 심리적 중간 거리쯤 되는 곳으로 약속을 정했다.     


  나와 후배가 먼저 만났다. 셋이 각자 다른 배에 탑승한 시점부터 종종 오는 작고 오붓한 주점에서 보기로 했다. 행여나 늦을까 잰걸음을 재촉하는데 손에 든 전화기에 후배 이름이 뜬다. 일찍 와보니, 간판이 바뀌었단다. 이름뿐 아니라 주인도 다른 얼굴이란다. 후배가 멋쩍게 가게가 바뀌었느냐 물었다. 먼저 주인이 요 근처에 자리를 넓혀 간 것 같다고 힌트를 주더란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새 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간판이 크고 화려해졌다. 반가우면서도 낯선 느낌. 서울 간 고향 친구가 기대보다 너무 잘 되어서 돌아오면 이런 기분일까. 가게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먼저 가게는 구석 자그마한 오픈 키친(가게가 워낙 작아서 주방을 숨길 수도 없다.) 둘레에 테이블 예닐곱 개가 규모의 전부였다. 이제는 1층에만 방이 두어 개에 방마다 테이블이 서너 개다. 비슷한 크기인데 주방만 없는 지하에도 손님을 받는다. 중소기업이 대박이 터져서 중견기업 단계를 건너뛰고 대기업이 됐다.     


  후배와 어리둥절해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아, 테이블도 이게 아니었는데. 익숙한 원목 빛깔 말고 모던한 검은색 테이블이 앉아있다. 메뉴판을 들추어 본다. 여러 안주가 없어지고 더 많은 음식이 새로 생겼다. 가격은 어디. 영 다시 못 올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올랐다. 이것저것 시켜 먹어도 나오면서 카드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보면 이렇게 착한 가격이 있나 흡족했는데, 이젠 아니지 싶다. 이제 숙려를 거쳐 안주를 주문해야 하겠다.     


  이럴 때 잘해야 되는데. 후배가 한쪽 입 꼬리만 올리며 나름의 일침을 놓는다. 맞는 말이지. 회사도 사람도 잘 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초등학교 2학년 속담 빈칸 채우기 시험 같은 얘기가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고 사업이 일약 발돋움할 때 자칫 본래 속성을 잃어 고꾸라지는 사례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늘 시키던 대로 먹어보고 그때 판단해보자, 후배와 말을 맞춘다.     


  선배가 음식과 나란히 들어왔다. 눈치 빠른 후배가 바뀐 가게 위치를 선배 오는 길에 미리 보내 놓았다. 선배도 우리 둘이 처음 들어올 때와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악수를 나눈 손으로 셋이 곧장 이슬 서린 맥주잔을 든다. 쨍, 유리잔이 짧은 비명을 지른다. 구구절절 말로 하지 않은 반가움이 차고 쌉싸래한 것을 타고 목구멍을 흐른다. 그제야 서로 안부의 말을 묻는다. 안주도 한 젓가락씩 들어본다. 그래, 맛은 안 변했네. 고개를 세워 주방 불길 앞에 수염 덥수룩한 주인장을 본다. 무심한 저 표정. 성업의 기회, 아니 위기를 주인장은, 또 가게는 아마도 잘 헤쳐 나갈 듯싶다.     


  맥주가 소주로 바뀌고 이야깃거리도 바뀐다. 2차 갑시다, 막잔을 부딪치고 동시에 자리를 박찬다. 예상대로 술값이 조금 올랐다. 아주 서운하진 않다. 우리가 알던 작은 그 술집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게 됐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이렇게라도 비슷한 모양으로 있어준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번창하시고, 변치 마세요, 무뚝뚝한 주인장에게 속으로만 빈다.     


  어, 이 집은 그대로네. 곱창집 앞에 세 사람이 발길이 붙들린다. 사람이 드글드글 북적북적, 북새통이 새삼 반갑다. ‘이모님’ 한 분이 저기 빈 데 동그란 드럼통 테이블로 우리를 이끈다. 곱창, 대창, 막창 모둠 3인분에 소주 하나요, 벽에 붙은 메뉴 한 번 보지 않고 속사포 랩 같은 주문이 발사된다. 먼저 나온 물수건으로 손과 목덜미를 훔친다. 잠깐 기다리자니 이모님이 꺼먼 철판을 번쩍 들고 와 화구 위에 올리신다. 초벌 된 모둠 곱창이 이미 지글지글 끓고 있다.     


  가벼웠던 대화 소재가 물 먹은 두루말이 휴지마냥 점점 더 무겁게 젖는다. 세 사람의 고달픈 일상, 근황이 엷게나마 공유된다. 그 애썼던 마음이 내 것처럼 와서 마음에 닿는다. 내가 얘기했나, 선배가 그랬나. 아님 후배가 말했나. 끄트머리에 이런 얘기가 오갔다. 세 사람의 사연이 굽이굽이 소용돌이치다 정말로 오랜만에 오늘 이 저녁 점처럼 만났다, 우리 알고 지낸 지가 십 수년이 넘어간다, 이렇게 이따금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하다. 누가 누구의 말에 대거리했는지 기억에 또렷하지 않지만, 범사에 감사하다! 그 말은 스냅숏처럼 남았다. 나이 들어갈수록 작은 것에, 아니 작은 것이 더 감사하다!     


  비싼 곱창을 반도 못 비우고 자리를 일어섰다. 선배가 나에게 전철 끊길 시간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후배는 한 잔 더 하자고, 시계는 뭣 하러 보느냐 팔을 챈다. 한 사람은 나 집 가는 길 행여 늦거나 곤란할까 봐, 다른 사람은 이 시간이 귀하고 좋아서 나를 잡는다. 두 마음이 모두 고맙다. 뾰족하고 못난 마음인데 그런 나라도 후배로서, 선배로서 오래도록 챙겨주고 따라주어서 몹시 감사하다. 복숭아나무 밑이 아니라 단골 술집에서, 곱창집 천정 밑에서 우린 또 그 밤 굳은 뜻을 모았다. 선배와 후배, 두 분도 모두 살펴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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