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천냥 빚 못 갚아도 천이백오십 원은 아낀다
내가 사는 경기도 수원에는 아주 좋은 복지 제도가 있다. 무료로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시립 도서관이 많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책나루’라고 이름 붙인 대단히 편리한 시스템이 있다. 그게 무어냐. 주요 거점이 될 만한 시내 전철역 곳곳에 전자식 사물함을 둔다. 온라인 서비스에서 신청만 하면 그 사물함을 통해 책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다. 도서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에는 없고 역 하나를 더 가야 있다. 아내는 책나루를 애용한다. 나는 이따금 쓴다.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의 넋두리를 들었다. 책나루 너무 편리하고 좋은데 전철 요금 더 내는 건 아깝단다. 퇴근길에 책 빌리고 반납할 때마다 요금을 다시 내고 승강장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중고교생들 학교 담장 타 넘어가듯 개찰구를 몰래 통과할 수도 없고, 난감해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미처 못 해봤다. 그래도 책 사는 값보다는 많이 싸니까. 우리 집에서 돈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미안하게도.
남자는 그런 본능이 있다. 상대가 고민거리가 있으면 명징한 해답을 내놓고 싶어 한다. 어느 심리학 도서에서 그 상대가 여자라면 답이 아니라 공감부터 표현하라고 읽은 기억이 있다. 이론은 실제와 다르다. 난 또 어설픈 답을 들이민다. “그 왜 개찰구 옆에 역무원분들이랑 연결할 수 있는 인터폰 달린 쪽문 있잖아. 그리로 얘기해봐. 책 반납하러 잠깐 나갔다 온다고.”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아내는 내켜하지 않는다. 거절당하면 어떡하냐, 무임 승차자로 오인받는 건 더 싫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느 날처럼 무사한 일과가 끝났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한참 가는데 바지춤이 부르르 떤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싸, 1250원 굳었네. 오빠 말대로 하니까 그냥 열어 주대.” 모르긴 몰라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것 봐라, 말이나 해봐라, 안 되면 그만이고 되면 ‘땡큐’ 아니냐, 내가 낸 어설픈 답안이 정답 처리가 되었다. 나도 어깨를 으쓱해본다.
살다 보면 영 안 될 것 같은 일이 뜻밖에 쉽게 풀릴 때가 있다. 그 해결의 열쇠가 말 몇 마디인 경우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간결하고 정중한 어휘로 적절한 시점에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누구냐는 운도 따라야 한다. 나의 의사를 무리 없이 수용했다면 그도 썩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 내 기대와 다른 답이어도 이번에는 내가 수긍할 수 있으면 된다. 나의 메시지가 너에게 가서 잘 닿았다. 나도 잘 받았다. 아주 기분 좋은 순간이다. 아내가 좋아했던 건 단지 그렇게 아낀 천이백오십 원 때문만은 아닐 테다.
침묵은 금이라고 배운다. 물론 영원히 그 입 다물라는 뜻으로 지은 말이 아님을 잘 안다. 아무 때나 섣불리 내뱉지 말고 신중하게 발언해라, 그래야 뒤탈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 침묵을 편리한 카드로 쓴다. 말해 봐야 뭐해, 들어주지도 않을 텐데, 괜히 나만 손해지, 벙어리 냉가슴을 아무 때나 앓는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침묵보다 귀한 게 원활한 의사의 소통이다. 나름대로 만든 조악한 원칙을 되새겨 보자. 내가 원하는 것을, 간결하고 정중한 표현으로, 적당한 때에, 상대가 누구인지 행운을 바라며. 이제부터 나와 아내는 천이백오십 원을 아껴가며 마음껏 수원시 안에 책을 빌려다 볼 것이다. 부러우면 이사 오시라.
덧말) 거주하시는 지역에 더 좋은 도서 대출 서비스가 있다면 굳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