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새벽 세 시에 난 깨어 있었다. 잡념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 하릴없이 누워 방 안 가득 무거운 어둠을 휴대전화가 내뿜는 손바닥만 한 빛으로 깨뜨린다. 인터넷 세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누리꾼들이 방금 올린 짧은 사연들이 기막히다. 제목만 언뜻 봐도 무시무시하다. 우리 동네 불났어요, 지금 전쟁 난 거 아닌가요, 대낮처럼 번쩍하더니 쾅쾅 폭탄 떨어진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강원도 동해안, 강릉 어디쯤 사는 주민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들이 몇 시간 전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서로 묻는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답을 모른다는 점이다. 추측만 난무하다. 군부대 안에서 일어난 불 같은데 119, 112 어디에 전화를 걸어도 아는 바 없다는 얘기만 돌아온단다. 부대 훈련 간에 난 사고 아니냐는 댓글이 페이지를 넘긴다. 제가 그 부대에서 전역했는데요, 주민들에게 미리 안내 방송도 하지 않고 한밤중에 화약 무기를 터뜨리는 훈련은 없습니다, 하는 답글이 달린다. 눈물 자국을 이모티콘으로 달며 공포와 불안에 압도된 사람도 여럿이다.
심지어 휴대전화로 급하게 찍은 동영상도 하나 둘 올라온다. 전화기 볼륨을 0으로 줄이고 옆으로 누운 파란 삼각형을 누른다. 누군가 말로 묘사한 것처럼 심상치 않은 빛이 번쩍 하더니 한눈에 봐도 엄청난 화염이 솟아오른다. 소리가 없는데도 현장에서 어떤 폭발음이 들렸을지 대번에 알 것 같았다.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24시간 방송하는 뉴스 채널이나 큰 방송사 어느 곳에서도 강원도에서 일어난 화재가 속보로 나오지 않는다. 리모컨을 잠시 내려놓고 스마트 폰을 다시 집어 든다. 포털 사이트에 강릉 화재, 강원도 사고 따위의 검색어를 입력한다. 중앙 언론사 어느 곳에도 기사가 없다. 생소한 이름의 지역 언론사 딱 두 군데에서 조금 전 단신을 등록했다. 기사를 끝까지 읽었지만 사태의 실상이나 원인에 대한 것은 찾지 못했다. 현상의 짧은 나열이 전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장 먼저 달린 글이 언제쯤이었는지 살핀다. 어젯밤 11시, 그러니까 무려 서너 시간도 전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도 기사 한 줄이나 짧은 특보 방송도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강릉 주민들이 이 시각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이른바 메이저 방송사나 신문사 한두 군데에서 처음 취급한 기사를 보았다. 자그마치 아홉 시간이나 지난 뒤다. 거론됐던 군부대 출신이라는 어느 지각 있는 누리꾼 얘기와 달리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가 맞는 것 같았다. 그만큼 초유의 사태인 것이 분명하다.
엠바고, 그러니까 보도 제한이라는 말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 것이야 내부자들만 알고 있고 바깥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대의를 위해 널리 알리기를 잠시 유보하는 것이라고 치자.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다. 지척에서 보고 듣고 겪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몸으로 공포와 직접 대면한 사람들이 인구의 수준으로 많다. 그런 일에 엠바고는 적용될 수 없다.
상상해보면 끔찍하다. 천운으로 인명 피해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상황이었다면? 요란한 폭발 사고 정도가 아니고 인체에 치명적인 무엇인가가 삽시간에 퍼져서 주민들의 시급한 대피가 절실했다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뇌리에 스칠 땐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재주 넘치는 고등학생이 그린 대통령 그림에 상을 줬다고 단체를 엄벌에 처하겠단다.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2022년의 대한민국엔 그가 없는 자리가 없나 보다. 표현의 자유라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빤한 낱말은 새삼 곱씹고 싶지도 않다. 알쏭달쏭 요지경 세상이다. 큰 소리가 들리면 티브이도 틀어보지 말고 잽싸게 피신해야 하고, 그림의 소재는 세심하게 분별해 가며 그려야 하는 대한민국에 산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