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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0. 2022

사위 사랑은 장모, 장모 사랑은 사위

  미국에 사는 이모가 이모부와 함께 한국엘 다녀갔다. 이모는 엄마의 남녀 형제 중 막내다. 자주는 아니어도 오륙칠 년에 한 번씩 고국을 찾았다. 이모의 부군과 함께 귀국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 기억엔 그렇다.


  아버지는 이모부에게 마음의 골이 깊다. 이모부, 그러니까 S서방이 빼앗아 가듯이 막내 처제를 데려가 놓고는 살갑게 연락 한 번 자주 않는 것을 두고 섭섭한 마음이 굳었다. 이모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모부를 따라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내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이다. 이모부에겐 처음부터 장인어른이 없었다. 돌아가셨으니까. 이모부의 장모, 나의 외할머니는 바로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이모 내외가 서울 중심부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이모만 왔을 때는 대개 부모님 본가에서 지냈다. 이번엔 미국에서 함께 온 일행이 여럿이란다. 엄마 나에게 부탁하길, 이모 호텔이 너희 회사 근처니까 가까운 식당 어디 예약해서 저녁 같이 먹을까,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녀딸 학원 끝나는 대로 데리고 전철로 오면 며느리도 회사 마치고 남편 회사 앞으로 오는 계획이다.


  회사 근처 화로구이 고기 파는 식당에서 이모 내외와 우리 집 삼대가 해후했다. 내내 냉랭한 무드면 어쩌지, 하는 모친의 걱정이 무색하게 더없이 화목하고 단란한 시간이었다. 식당을 나와 커피숍으로 이동해 여담을 나눴다. 이모와 이모부를 배웅하고 회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 나왔다. 내 낡은 SUV에 삼대 다섯 식구가 알차게 탑승해서 집으로 향한다.


  “Hoon이 아부지, 그래도 S서방한테 따뜻하게 잘 하대. 당신이 막 뭐라고 할까 봐, 아니면 쌩 모른 척할까 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모친 말하고 부친 받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가도 사람이 앞에 있는데 그럼 어떡해. 멀리서 왔는데 처제 봐서라도 잘해줘야지.” 아버지의 긴 설명이 아니라도 내가 처음부터 봤다. 식당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버지는 먼 이국에서 온 아래 동서의 손을 먼저 덥석 잡았다.


  엄마가 화제를 바꾼다. S서방이 그렇게 효자일 수 없단다.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지극정성을 다했단다. 이모가 보고 엄마에게 전한 얘기다. 하루는 이모부가 시어머니 손톱을 깎아주는데 그러기 전에 뜨거운 물수건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아주더란다. 마른 손톱을 바로 깎으면 자칫 충격이 갈까 봐 미리 부드럽게 하는 거였단다.


  거기까지 듣다가 운전대를 잡은 내가 한마디 내뱉는다. “아니, 무슨 그런 효자가 있어! 내 엄마가 귀하면 내 아내의 엄마도 귀한 거지! 이모부란 사람, 내가 머리 굵어서 오늘 제대로 처음 봤고 아까 식사 자리 좋았지만 돌아가신 외할머니한테 너무 했지! 그래도 내 처의 엄마, 장모님인데 이모부가 살아생전 외할머니한테 멀리 미국에서라도 뭐 어떻게 잘해줬단 얘기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리고 아버지 심정도 이해가 가.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이라도 그래. 장인 장모 없대도 이모부한테 처가는 아내의 큰 언니인 우리 엄마고 그 바깥양반인 우리 아버지지! 게다가 결혼 전까지 데리고 살아줬던 거면 말 다했겠고. 사람이 아무리 무심해도 아버지한테 형님 잘 지내시느냐, 전화 한 번 없는 건 말이 안 되지!” 실제로 그런 것이 젊은 시절 부친은 처가인 엄마 식구 집안일 대소사를 두 팔 걷어 부치고 챙겼다. 맏사위인 탓에.


  어릴 때 전혀 모르던 어른들의 사정이 장가를 들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의 오랜 서운함도, 이모부의 말하지 못한 미안함도, 막상 부대껴 만났을 때 두 손 잡는 동서 지간의 정도, 아주 모를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부터라도 아내의 엄마, 장모님한테 잘해야지. 장모님 혼자 댁에 계신 날, 아내 모르게 회사에서 배달 앱으로 장모님 좋아하시는 추어탕 시켜드리곤 하는 게 못난 사위의 하찮은 애정의 표현이지만 그것보다 뭐가 더 나을지 늘 떠올려야지. 내 엄마 좋아하는 것 마주칠 때마다 아내의 엄마도 생각해야지. 자동 반사로.


  아침에 일어나서 작은 방 화장대 위에 못 보던 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이게 뭐래, 하고 만지작거렸더니 아내 말하길, 심드렁하게 “어, 오빠 생일이라고 엄마가 주고 갔어.” 한다. 슬쩍 열어보니 주황색 지폐가 대여섯 장이나 들었다. 에구머니, 뭘 또 이렇게 많이 넣으셨대. 차마, ‘인 마이 포켓’ 할 수 없어서 가만히 내려놓는다. 오빠, 이 돈 아니어도 평소에 갖고 싶은 거 다 사잖아, 그러니까 이 돈은 내가 챙길게, 하는 걸 군말 없이 따른다.


  다음날이었나, 오후에는 휴대전화 화면에 ‘장모님’이라며 벨이 올린다. 예, 장모님, 어쩐 일이세요, 하고 받으니 “어, Hoon 서방, 바빠?” 하신다. 아니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했다.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 돌아오는 주말에 시간 된다면 어디 가서 먹고 오자, 내가 사줄게, 하신다. 이어서 말씀드린다. “생일이라고 봉투에 돈도 그렇게 많이 넣어 주시고는 뭘 또 사주신다고요, 그럼 이렇게 해요, 점심때 차로 모시러 갈 테니까 뭐든 맛있는 거 먹고 장모님 주신 봉투에서 계산 치를 게요.”


  반면의 교사, 타산의 지석.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가슴에 아로새긴다. 나의 것이 귀하면 너의 것도 귀하다. 먼 훗날 그때 그러지 말 것을, 아니면 그렇게 했어야 할 것을, 후회하지 않게. 있을 때 지금 조금씩이라도 잘 하자. 사위 사랑은 장모가, 장모 사랑은 사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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