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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07. 2022

트라우마

  “전철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있어.”

  아내가 보낸 메시지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나는 아내보다 몇 정류장 뒤에서 다른 열차로 좇는 중이다. 맞벌이하는 아내는 나보다 십오 분 먼저 집에서 나선다. 어제 일어난 기차 사고가 끝내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전철이 제 속도로 달리지 못한다. 정류장에 서서 한참 문을 열어놓고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찬바람에 목덜미가 시리다. 반복되는 승무원 안내방송이 처음에는 원망스럽다가 끝내 안쓰럽다.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이미 객실은 이쑤시개 통 같은 만원이 됐다.


  “문 열리면 바로 내려서 택시 타.”

  아내가 알겠다고 응답을 보내온다. 몇 분 사이 짧은 메신저 대화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면서 아내가 중요한 생존 정보를 알려왔다. 열차가 서울 어디쯤에서 끊긴 상태란다. 오빠는 중간에서 다른 선으로 환승하고 회사에서 조금 먼 역에서 내리는 게 낫겠단다. 오, 고마워, 회사 들어가면 알려줘, 답신을 보낸다. 환승역에서 내리려는데 문 앞 승객들 때문에 온전히 내릴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다. 문이 열려도 꼼짝하지 못할 때쯤 어떤 여성이 갑갑한 공기를 깨뜨린다. 내릴게요! 외마디 절규에 아득해지는 의식이 돌아온 듯 사람들이 애써 길을 터준다. 전에 없던 광경이다.


  언젠가 가까운 이들에게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저는 실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질고 모난 저를 너그럽게 품어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잘 살고 있습니다만 속내는 그렇습니다. 어쩌면 진즉에 눈치 채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 알고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타인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구나. 오해는 마십시오, 개인주의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릅니다. 적어도 나 위한다고 남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에게 폐 끼치는 것도 그 반대가 되는 것도 많이 싫어할 뿐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시시콜콜 늘어놓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믿음과 기대, 그들에게서 돌아온 메아리가 내 마음과 같지 않았다, 크고 작은 상처가 쌓여 두꺼운 외피가 되었고 그게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는.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일어난 큰 비극으로 사람을 더 멀리하게 될까 근심한다. 현실과 마음의 공간 안으로 사람을 들이는 것 자체가 싫어지지 않을까 골몰한다. 그러다 마침내 모두 기피하고 배척하게 되어서 세상 혼자 남은 외딴섬이 되지는 않을지도 상상한다. 마르고 황량한 작은 뭍이 마침내 무인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진짜 속마음을 자백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비사회화, 그것이 우리가 걷게 될 진화의 방향, 자연선택의 종착역이 아니길 바란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은 그것이 자기 방어에 불과하며 마음으로 교통하는 이가 그럼에도 영(0)에 수렴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이의 숨겨둔 진심임을 고백한다.


  축제가 끝났다. 어쩌면 영원히. 앞으로 남은 삶의 모든 그것에서 전과 같은 설렘, 기쁨, 흥분, 열정 같은 것을 맛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런 것에 아쉬움을 가지는 것조차 대단한 사치임을 깨닫는다. 축제가 대수랴. 사람의 군집 자체에 실제 경험한 것은 아닐 공포감이 때마다 엄습할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떠난 이들이 먼 곳에서 누릴 뒤늦은 안녕의 대가라면 또 나는 얼마든지 감수하며 살아갈 것이다. 일순간 다시 슬픔이 밀려들어 손가락을 부득불 멈춰 세운다. 떠난 많은 이들과 남겨진 더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이 찾아오길 가슴 깊은 곳에서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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