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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13. 2022

한 해를 또 살아내다

  선배는 올 한 해 어떠셨어요, 내가 물었다. “아휴 갈수록 작아지는 것 같고, 숨만 겨우 쉰 일 년이었지 뭐.” 나도 말에 고리를 건다. “저는 왜 좀 전에 S가 여기 테이블에 앉으면서 그랬잖아요.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 월화수목 계속 송년회라고. 저도 예년까지는 그랬는데 연말 모임 같은 거 부쩍 줄었거든요. 올해는 오늘 우리 이 자리랑 한두 번 모임 정도 남은 게 다고요. S가 역시 우리 중에 외부 활동이 많구나 싶어서 공연히 부럽더라고요. 뭐랄까 지금 느끼는 대로 저는 올 한 해 침잠하는 시간이었어요.”


  전 직장 선후배 넷이 명동 초입 선술집에서 모였다. 지금은 각자 일터가 모두 다르다. 선배 E는 이웃 방송사의 광고와 협찬 분야 영상 제작을 지휘한다. 나보다 한 살 적은 동기 S는 그 방송사의 스포츠 책임 프로듀서다. 가장 나이 어린 G만 전 직장인 방송사에 남아 경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십 수 년째 거르지 않고 막달이면 무조건 모이는 네 사람이다. 애증의 전 직장, 첫 회사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그래, 나도 다르지 않았어. 이번에 또 칼바람 불었잖아. 윗사람들 다 날아가고 나랑 겨우 몇 명 남았는데 다음엔 내 차례인가 싶고, 영 불안하더라고. 게다가 컨디션도 안 좋아서 요새 술도 잘 안 마셔. 이따금 Hoon이 너한테 전화해서 한 잔 할까 싶다가도 다음 날 걱정에 솔직히 망설여지더라.” 아휴, 그러셨군요, 하는데 S가 술잔을 들며 말끝을 붙잡는다. “에이 선배, 형! 나도 별 것 없어. 그래 봤자 빤한 자리들이겠고 오늘이 훨씬 중요하고 즐겁지!”


  우리 네 사람은 절대로 서로 의식하고 견제하는 사이가 아니다. 일부러 뽐내고 으스대는 일 역시 단연코 없다. 늦게 온 S가 외투를 벗으며 했던 말, 자기 오라는 자리가 늘비하다는 얘기가 그런 맥락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그냥 오늘도 달려봅시다, 하는 너스레였을 테다. 한데 왠지 별 것 아닌 그 말이 짧은 찰나 인상에 남았다. 왠지 나는 오래 한 자리에서 같은 일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업무 내외적인 교류의 폭도 빤한 듯하고. 공연한 비교, 뜻 모를 자격지심이라고 탓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창피한 감정이 슬쩍 마음 경계를 넘어왔다.

 

  그러길 잘했다. 네가 부럽다, 난 그러지 못하거든, 너도 그러냐, 나도 다르지 않다, 아니 나도 실은 별 것 없어, 우리 다 같지 뭐. 대화의 물줄기가 그렇게 흘러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솔직한 사람들이다. 의뭉스럽게 상대를, 또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세월이 빚어낸 네 사람의 우정, 동료애, 동지애, 생사고락을 함께 겪은 전우애에 견줄 만한 끈끈하고 애틋한 연대의 감정이 우리를 그런 사이로 만들어 놓았다. 선배 E의 지난 일 년 소회로 시작해서 내가 보탠 나의 보잘것없음이 동기 S의 공감으로 이어져 대화의 온도가 일순 올라갔다. 후배 G, 너는 어땠냐는 물었다. “저야 뭐 형님들처럼 ‘장’도 아니어서 밑에서 박박 기었죠 뭐.” 네 사람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예전에 어느 성공한 의사가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삶의 지혜를 엮어낸 책을 집어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작자의 친자가 아닌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책의 서두 어느 꼭지엔 분명 ‘아들아, 너의 약점을 함부로 타인에게 얘기하지 마라. 그것은 언제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너를 공격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 놓고 저기 말미에선 ‘아들아, 너의 허물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라. 네 삶이 풍요로울 것이다.’라고 써놓았다. 이 무슨 궤변에 자기부정이며 자가당착과 견강부회인가 싶었다. 아버지, 저더러 어쩌라고요, 의사 선생 아들의 반응이 안 봐도 뻔했다. 다른 아비의 아들인 나는 안다. 진짜 마음의 빈 곳을 채워주는 이들은 나의 약한 곳에 마음을 쓰고 그도 엇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임을. 중년의 불안과 고립감이 내 것만이 아님을 새삼 깨우친 그 밤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불콰한 취기로 귀가했다. 마침 그 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대작 영화보다 더한 감동으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근래 이렇게 기분 좋게 잠든 적이 있었나 싶은 밤이었다. 가족들과 오붓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했다. 선배 E가 넷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에 메시지를 띄웠다. “S야, 제작본부장 된 겨? 축하해!” 깜짝 놀라 나도 얼른 축하 인사말을 달았다. 여기저기 모임 많다더니 빈말 아니었구나, 그래 사람이든 일이든 열심히 만나고 한 것만큼 돌아오는 거겠지. 내 일처럼 기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시샘과 질투 따위 감정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잘 되었다는 나의 축하 역시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또 몇 달 후에나 해후할 것이다. 어쩌면 넷이 모여 완전체가 되는 건 계묘년 세밑에나 가능할지 모른다. 그때도 우리 네 명의 중년은 서로에게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날까지 또 안녕히. 시쳇말처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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