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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24. 2023

아부지, 춘천, 막국수

  그럼 나랑 아부지(나는 아버지를 이렇게 발음한다. 어릴 때부터)는 차 타고 나가서 막국수 사 먹고 올게. 아내와 아이, 모친까지 여성 셋은 펜션 근처 유료 수영장 안 매점에서 점심을 때우겠단다. 아내와 아이는 라면, 모친은 우동으로 메뉴까지 미리 정해놨다. 하긴 물놀이 사이에 먹는 라면이며 우동보다 맛난 음식은 없다. 따라가지도 않을 물놀이 간식에 괜히 군침을 삼킨다.


  노부모를 모시고 삼대 다섯 식구가 장마 틈새에 피서를 왔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沐洞)에 위치한 펜션에서 이박삼일 지낸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지명의 유래는 이렇다. 옛 이름은 ‘멱골’이란다. 개울물에 들어가 몸을 씻거나 노는 걸 뜻하는 ‘멱감다’의 그 멱이다. 목동의 목 자가 바로 멱감을 목(沐)이다. 멱감기 좋은 동네, 이름에 걸맞게 숙소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유리처럼 투명하다.


  어제 오후 도착해서는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혔다. 아이들 좋아하는 미끄럼틀 같은 건 없는 네모반듯한 수영장이다. 오늘 아내와 딸아이, 모친 셋은 숙소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파도 풀(pool) 시설까지 있는 곳으로 원정을 떠난다. 부친과 나는 남는다. 아버지와 나는 물놀이 뒷설거지가 성가시다. 둘째 날 점심은 두 팀으로 떨어져 해결한다. 대강 숙소에서 라면으로 때울까 하다가 마침 가평인데 부자가 모두 좋아하는 막국수를 사 먹고 오기로 한다.


  딱히 아는 식당이 있지 않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제법 후기가 나쁘지 않은 곳이 있다. 닭갈비 전문점인데 막국수도 꽤 맛있단다. 아부지, 이 집 어때요? 아무 데나 괜찮으니까 너 가고 싶은 데로 가자, 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국수에 관해서는 심사 기준이 혹독하다. 이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은 강원도 영월에서, 청년기를 춘천에서 보낸 아버지에게 막국수는 둘도 없는 솔 푸드(soul food)다. 가장 좋아하면서도 그래서 늘 실망하는 음식이 바로 막국수다.


  금세 식당에 당도한다. 주차하고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선다. 동그란 나무 테이블에 묻은 손때만 봐도 오래된 집이 분명하다. 이곳저곳 테이블에서 닭갈비 철판이 지글지글 끓고 있다. 신발 벗고 올라가 앉는 구석 자리에는 대낮부터 술병이 굴러다닌다. 낮술 안주로 무언들 맛나지 않겠냐만 이 집 닭갈비도 여느 맛집 못지않을 것이 확실하다. 만원 손님들 사이로 부자가 마주 앉아 막국수 두 그릇을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며 아버지에게 지금껏 몇 번은 들었을 춘천 막국수의 역사와 유래를 듣는다. 막국수의 본고장 춘천에서 아버지가 처음 그것을 맛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1960년대 후반이다. 어느 노모가 영어(囹圄)의 몸이 된 자식을 가까운 데에서 보살피기 위해 춘천 교도소 앞에 집을 얻었다. 그 자리에서 집에서 먹던 요리법대로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았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로 접어들며 시내 곳곳으로 퍼져 이른바 춘천 막국수가 되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다. 막국수 자체의 기원은 설이 분분하지만 최초의 상업적 레시피가 완성된 건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기실 주문할 때부터 이 집이 숨은 맛집일 것임을 직감했다. 벽에 붙은 차림표를 훑는데 막국수의 구분이 따로 없다. 냉면처럼 물과 비빔을 따로 가르고 있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물 막국수, 비빔 막국수 구분 없이 막국수 단일 메뉴다. 내가 춘천 막국수를 처음 접한 건 아버지보다 이른 중학생쯤이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춘천 시내 이 집 저 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막국수들은 하나같이 물과 비빔의 구분이 없었다. 국물이 없이 양념과 고명을 얹고 들기름을 끼얹은 국수가 나온다. 냉육수 주전자가 따로 나와서 입맛에 따라 자작하게 혹은 흥건하게 말아먹는다. 나중에 서울서 맛본 막국수는 물과 비빔의 갈래가 있었다.


  막국수가 나왔다. 비주얼 일단 합격. 스테인리스 그릇에 거뭇거뭇한 메밀면이 소복하게 담겼다. 그 위에 손으로 투박하게 찢어 넣은 상추, 가지런히 썬 무편 절임, 넉넉하게 올린 김가루, 삶은 계란 반쪽, 빨간 양념장에 통깨를 뿌려 마무리했다. 역시나 냉육수는 주전자에 따로 나온다. 식초며 겨자도 양념통에 따로 나오는데 여기까지면 섭섭하다. 백설탕 담은 양념통까지 나와 주어야 오리지널 춘천 막국수의 완성이다. 설탕 몸에 안 좋다지만 그게 반 숟가락 들어가야 맛의 빈 곳이 빈틈없이 채워진다.


  젓가락으로 석석 비벼 후루룩 첫맛을 본다. 맛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데 아버지도 동시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부지, 입에 맞아요? 남은 것을 마저 씹어 넘기고 아버지가 말한다. 음, 괜찮네. 이 정도 평가면 대단히 맛이 있다는 소리다. 입으로 면발을 가져가며 아버지 드시는 것을 눈으로 따라간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육수를 넣지 않는다. 식초와 겨자 조금, 설탕만 솔솔 뿌려 드신다. 말 그대로 게눈 감추듯 큰 국수 한 덩이를 비우더니 그제야 육수 주전자 주둥이를 기울인다. 계란 반쪽을 드시고 숟가락으로 짧게 끊긴 면발과 남은 양념을 싹싹 긁어 섞는다. 사찰의 스님들 발우공양하듯 그릇째 손으로 들어 남은 국물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마신다. 이 모든 과정과 단계가 물 흐르듯 연속의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최소 오십 년 이상 경력의 관록이다.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니 나도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 집 막국수는 오리지널의 조건을 충실하게 재현한, 객관적으로도 맛이 있는 음식이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음식에 장성한 아들과 오랜만에 단둘이 마주 앉아서 먹는 의미가 더해진다. 그 맛이 더 달콤해서 아버지가 여봐란 듯 맛있게 드신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맛있었다. 우연히 찾아낸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마음을 알고 아버지가 맛있게 드셔 주셔서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식 입에 밥 술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더니 늙은 아비와 늙어가는 아들은 마주 앉아 서로 먹는 것만 봐도 입맛이 도는가 보다.


  펜션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른다. 가평과 춘천을 잇는 지방도로가 비 때문에 토사가 넘쳐흘러 통제됐단다. 그것만 아니면 저녁은 춘천으로 넘어가서 먹고 돌아올 요량이었다. 아부지, 춘천에는 다음에 가야겠어요. 그래, 빗길 위험하니 그러는 편이 낫겠다, 아버지가 응답한다. 그럼에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뜻밖에 맛난 점심을 먹은 부자는 공히 흡족함을 느낀다. 애미는 이따 몇 시에나 돌아온다디? 오후 다섯 시쯤 온대요. 아휴 모녀 삼대가 피곤들 하겠구나. 멱감으러 간 식솔들 얘기로 돌아가는 차 안 공기를 힌다.



# 가평 화악리 닭갈비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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