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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13. 2023

괴상한 집착증

  상사 험담 없이 어찌 회사 생활이 가능할까. 뒷말이 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친하고 귀한 동료가 있다. 그와 초복 삼계탕 나눠 먹고 한 바퀴 걷는다. 구성원들에게 귀감이 되기는커녕 악습을 퍼뜨리고 부추기는 일부 몰지각한 상급자들 얘기로 흘렀다. 동료의 말에 맞장구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왜 그런 언행을 일삼아서 사내에 그런 것을.. 어, 음.. ‘확대 재생산’ 하냐고.” 확대 재생산? 이것보다 더 간단하고 적확한 어감인 말이 있다. 그다지 어려운 한자어가 아닌 낱말이다. 하, 그게 뭐더라?!


  나는 고요한 호수 같은 성정이 못 된다. 훅 불어도 물결이 일렁이는 고작 물그릇만 한 존재다. 예민하고 집요해서 공연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때도 있다. 직업 작가도 아니면서 어휘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가운데 하나다. 방금처럼 머릿속 어느 서랍에 분명히 들어있는 것을 알지만 얼른 튀어나오지 않아 아리송한 상태, 그것을 특히 견디지 못한다. 고유명사가 생각나지 않거나 대체할 수 있는 짧은 용언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뭉치고 커져서 흉곽을 옥죈다. 밤에 잠까지 안 온다면 과장일까.


  사무실에 복귀해서도 갑갑한 마음이 이어진다. 마치 변소에 갔다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바지춤을 여민 느낌이다. 그 상태로 종일 돌아다닌다면 얼마나 찝찝한가. 신문 보고 책 읽고, 티브이며 동영상 콘텐츠 보고 지내다 보면 우연히 또 저절로 만나게 되겠지, 다독인다. 한데 다짐할수록 집착을 놓지 못한다. 어느 뇌 과학자가 그랬다. 인간은 부정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 하고 지시하는 순간 머릿속 허공에 코끼리가 불쑥 다리를 내민다.


  게다가 나는 이른바 멀티 플레이가 안 되는 인간이다. 이대로 집착이 커지면 오후 업무는 부실 공사가 될 것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복무쌍지 화불단행(福無雙至 禍不單行)인 법. 탁상전화가 시끄럽게 우는 것이 예감이 영 싸하다. 아니나 다를까, 인접부서에 성가신 일이 생겼다.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돌리는데 오늘따라 의사 전달에 잡음이 낀다.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별것 아닌 사안에 애먹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언어 중추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막힌 곳을 찾아 뚫자. 그렇지 않으면 내둥 이러다 퇴근해서도 저녁을 망칠 게 빤하다. 일단 아까 어떤 뉘앙스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정리한다. 별로 좋지 않은 사조나 관념, 풍습 따위가 두루 퍼지도록 부추길 때 쓰는 표현인데 ‘확대 재생산’처럼 장황하지 않은 낱말. 막상 들어보면 어려운 말도 아니어서 흔하게 쓰는 용언이다. 누구든 붙잡고 이럴 때 쓰는 말이 뭐가 있더라,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봐, 하고 싶지만 광인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아하! 사람 아닌 것에 물어보면 되지.


  먼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 한데 어떤 검색어를 입력해야 할지 막막하다. ‘확대 재생산 유의어’로 녹색 창을 채우고 엔터키를 누른다. 양대 포털 모두에서 의도와 무관한 내용이 출력된다. 커서를 움직여 클릭해 봄직한 구절이 하나도 없다. 검색 엔진이 이해하는 언어 구조는 인간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물어본 내 잘못일 공산이 크다. 이해할 수 있게 다시 물어보자. 나쁜, 퍼뜨리다, 인식, 풍토, 부추기다, 한자어, 라고 입력한다. 역시나 난해한 결과치만 늘비하다.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것, 해외 인공지능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한다. 먼저 인공지능에게 한국어로 물어봐도 되는지 승낙을 구한다. 쿨하게 그러려마 한다.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창궐하다, 만연하다’처럼 나쁜 것이 널리 퍼지고 구축되게 한다는 뜻의 비슷한 말 뭐가 있지?” 금세 답한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확산되다, 전파되다, 퍼지다, 유행하다.” 아냐, 이 중엔 없다. 다시 묻는다. “나쁜 인식이나 풍토가 자리 잡게 부추기다, 라는 뜻을 가진 말은 없을까?” 다시 답한다. “악순환, 부패하다, 쇠퇴하다, 악화되다, 증식하다, 번성하다, 전파되다 등이 있습니다.” 아니지 아냐, 내가 찾는 단어는 그런 게 아니라고.


  대학 졸업반 시절,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같이 공부하던 선후배, 동기들이 여럿 있었다. 신문사나 방송사, 언론사 입사 시험 과목 중엔 글짓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동의 주제어를 두고 논술이며 작문을 연습할 때 언뜻 떠오르지 않는 낱말이 있다. 그러면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쿡 찌른다. 이렇고 저럴 때 쓰는 표현 중에 적당한 게 뭐가 있지? 그러면 여럿이 쏟아내는 낱말 가운데 내가 찾던, 딱 맞춤한 것이 반드시 걸려든다. 오케이, 땡큐! 이따 자판기 커피 한 잔 살게. 막혔던 글 구간을 신나게 질주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가 호시절이었음을 이제 와 안다.


  퇴근길 만원 전철 안에서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와서 씻고 저녁밥 먹는 데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어볼까, 하다 접는다. 괴상한 집착증이 있는 사내와 운명으로 엮인 것에 실증 사례 하나를 보탤 뿐이다. 중학생 딸아이는? ‘뭐래!’ 눈 흘기며 핀잔이나 줄 것이 명역관화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 머릿속 서랍을 하나하나 뒤져서 열어보아야 한다. 어떤 좋지 않은 것이 마치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게 두는 것인데 육성한다는 뜻이 내포돼야 해. 그런데 유익한 것에는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야. 그래서 기르고 키우는 ‘육성’은 아닌 것이지. 알 듯 말 듯, 단서의 끄트머리가 잡힐 듯 말 듯. 근질근질 가렵고 갑갑한 상태.


  남들에게 쉬 털어놓을 수 없는 의아한 이유로 미완의 하루를 보낸다. 잠들기 전 마지막 의식을 치른다. 우리 이제 불 끄고 잡시다. 엄마, 딸, 잘 자고 우리 딸 한 번 으스러지게 안아봐야지, 그 순간! 영화 <트랜스포머> 예고편에서 제목 글자의 자음과 모음이 슈슈슉 척척 변신로봇처럼 구부러지고 회전하다 마침내 완성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네 음절 단어가 조합된다. “조, 장, 하, 다.”


  이거였다. 뭐 어려운 단어라고 이게 그렇게 생각 안 나냐.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포털 사이트를 검색한다. 조장(助長)하다, 더 심해지도록 돕다, 옛날 송나라의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어떤 농부가 곡식의 싹이 더디 자라자 급기야는 싹의 목을 뽑았단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고한다. “부인, 내가 싹이 ‘자라는 걸 도와주고(助長)’ 왔소.” 아내가 나가보니 싹이 모두 뽑혀 죽어있었다는 웃픈 해프닝이 말의 유래라고 나온다. 내가 연상했던 것처럼 옳지 못한 것을 도와준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는 설명이 뒤에 붙었다.


  휴, 이제야 드디어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됐다. 앓던 이가 빠진 듯 개운하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한 번 더 끌어당겨 안는다. 몸부림치며 품에서 벗어난다. 찜찜한 미완이 될 뻔한 하루가 극적으로 완결된다. 아울러 다짐한다. 글과 책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하겠다. 몸뚱이 육신의 노화보다 사고 중추의 그것이 더 염려스럽다. 괴상하고 요상한 집착증이 언제 불현듯 도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고 관리하자. 내친김에 휴대전화 메모장에 모아 둔 낱말 목록을 빠르게 톺아본다. 틈입, 새되다, 부면, 어름, 들비비다, 가납사니, 맹성, 엽렵하다, 배태, 안돈, 벌열, 회술레 등 때마다 기록해 둔 낱말 밑에 하나 더 줄 세운다. 조장(助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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