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Jul 06. 2023

인디아나 존스와 시뮬레이션 우주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란 과학 이론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가 실은 거대한 시뮬레이션, 즉 가상현실이라는 가설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쉽다. 먼 미래 인공지능 컴퓨터가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을 에너지 공급원으로 삼는다. 인간은 자신들의 진짜 몸이 디스토피아의 어느 구석에 잠자듯 누워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인공지능이 만들어 놓은 가상 세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공상과학 소재로 쓰일 법한 허무맹랑한 이론을 세상 머리 좋은 일론 머스크가 지지한다고 들었다. 그가 그러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나 보다.


  주말 늦은 저녁 가족들과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 개봉했다. 시네필인 나로서는 거를 수 없는 필수 관람 목록이다. 마침 티브이 영화 채널에서 프랜차이즈의 구작을 연속 편성으로 방영해 준다. 고고학자 헨리 존스 주니어 박사가 어쩌다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리게 됐더라? 아, 서먹한 아버지가 주니어, 우리 식으로 치면 ‘아들’ 하고 부르는 게 싫어서 기르던 개 이름을 스스로 붙인 거였지! 느슨해진 세계관을 다시 정립한다. 이제 그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러 간다.


  평단에서는 뜻밖에 혹평이 들린다. 줄거리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가 진부하다, 조력자와 악당의 캐릭터 구축이 빈약하다, 한 마디로 지난 작품들보다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중 어느 평론가의 질책은 뼈아프다. “배우가 겨우 존재하는 것과 그가 여전히 건재한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해리슨 포드가 톰 크루즈일 수 없는 이유겠죠.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리꾼의 어떤 댓글에는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법, 차라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쯤에서 끝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소회도 있다.


  나는 어떻게 보았느냐. 세간의 서운한 감상평이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님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 내겐 가슴 벅찬 두 시간 반이었다. 다른 걸 다 뒤로 재껴두고 “빰빠밤빠 빰빠바~” 그 저명한 주제가를 최신식 음향 설비를 갖춘 2023년의 영화관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눈가가 뜨거워졌다. 영화 도입부에 최신 영상 기술 덕분에 만나볼 수 있었던 젊은 존스 박사도 놀라웠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현실 세계의 그 역시 무척 반가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연성, 완성도 따위의 낱말은 그 순간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은발의 노신사가 된 존스 박사가 흑갈색 중절모와 채찍을 집어 드는 단 한 컷만으로 이 영화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친절한 아저씨, 톰 크루즈와의 비교도 불허한다. 두 사람 나이차가 자그마치 스무 살이다. 톰 아저씨가 아직은 뛰고 매달리고 구른다지만 이십 년 뒤에도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포드 옹이 여든둘의 노구를 이끌어 저 정도 액션을 소화하는 것만도 경이롭다. 외려 팔순 할아버지가 청년처럼 신출귀몰했으면 더 현실성을 해쳤을 거라고 애써 자구한다. 계단 하나도 오르기 버거운 나이에 보물의 단서를 찾아 잠수복을 입고 손수 바닷속으로 내려간 존스 박사의 수중 액션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도 비범한 일이지만 존재 자체로 빛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는 어떤 누리꾼에겐 응원했던 인물의 행복한 퇴장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라고 귀띔하고 싶다.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정말로 시뮬레이션 우주는 아닌지 의심한다. 왜 하필 나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20세기의 끝과 21세기의 벽두를 관통하여 살고 있는가. 전기나 의료,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한 고대와 중세 야만의 시대가 아닌 까닭은 딱히 무엇인가. 역사 속 인물인 세종과 충무공, 대양 건너 다빈치와 아르키메데스는 너무 아득하다. 위대한 사상가와 과학자, 정치인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이미 신화가 되었거나 살아있는 전설인 대중문화예술, 스포츠 분야의 별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새삼 놀랍다. 나의 대체 불가하여 영원한 인디아나 존스, 배우 해리슨 포드 역시 나의 가설에 빼놓을 수 없는 증거다. 어쩌면 나는 내 육신이 25세기 어디 어두컴컴한 밀실에 누워있는 것도 모르고 인류의 가장 찬란한 한때로 꾸며놓은 머릿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런 것이라면 내 분연히 일어날 수 있게 누군가 현실 세계의 내 귓전에 음악 소리 한 번 크게 틀어 달라. 빰빠밤빠 빰빠바~!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학교에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