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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07. 2023

미용실에 간 사내

  어떻게 해드릴까요? 세련된 스타일의 남자 미용사가 묻는다. 쭈뼛거리며 핸드폰에 저장해 둔 사진을 그에게 보여준다. 혹시, 이렇게 될까요? 잠시 골몰하더니 미용사가 답한다. 고객님은 기장이 짧아서 당장은 어렵고요, 조금 더 기르셔야 하는데 최대한 비슷한 스타일로 만들어 드릴게요, 위는 ‘@#$%펌’으로 하고 옆머리는 ‘*&^%펌’으로 진행하려는데 괜찮으실까요? 눈만 껌뻑거리며 대답한다. 알아서 해주세요.


  오빠, 이렇게 다시 머리 길러보는 거 어때? 두어 달 전쯤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유명인 사진을 들이밀며 물어왔다. 그러지 뭐. 대답은 심플하다. 나는 같이 사는 여성의 말에 비교적 충실히 따르는 편이다. 그녀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가급적 토 달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건 그렇게 어려운 미션도 아니다. 밥 잘 먹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결혼 이후로 종래 짧은 머리였다. 그러기를 벌써 십 수년이다. 아내와 처음 만나던 시절엔 아니었다. 타고난 이목구비는 도리 없지만 머리 모양까지 포기하던 때는 아니었다. 이따금 큰 미용실에도 가고는 했었다. 그러다 어느새 이성 앞에서 꾸미기를 완전히 그만둔 수컷이 됐다. 그게 편했고 장점이 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 편리했다. 머리 감아서 수건으로 툭툭 털고 헤어드라이어로 위잉 잠깐 바람 불면 금세 마른다.


  반복은 행위의 강화를 견인한다. 머리가 점점 짧아졌다. 동네에 저렴한 남성 전용 미용실에서는 내게 직업이 군인이냐 물은 적도 있었다. 아니요, 회사원인데요. 도대체 어떤 회사를 다니는 거냐고 다시 묻은 싶은 표정을 짐짓 읽을 수 있었다. 실은 군인 같은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처럼 매일 아침, 다 무찔러버리리라, 날이 선 마음을 품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의(戰意)가 일터에서 만난 여러 타인들을, 또 스스로를 경직되게, 경계하게 했을 법도 하다.


  주변에 이삼십 대, 추측건대 미혼의 젊은 총각들뿐이다. 가운을 두르고 머리에 무언가 돌돌 말고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동네 미용실에선 채 일이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집도의의 수술을 돕는 수련의들처럼 보조 미용사 두엇까지 가세해 머리 모양을 만든다. 회전 운동을 하는 전열기를 끌고 와 뒤통수에 쐰다. 폭신한 쿠션을 안겨주며 음료는 무얼 드릴지 묻는다. 커피 말고 아무거나요. 머리에 요상한 것을 주렁주렁 달고 빨대에 입술을 오므리는 거울 속 사내를 보며 묻는다. 너 이러는 거 얼마만이냐.


  아직 완성된 머리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무언가 마음에서 고양되는 기분을 느낀다. 속에서 차오르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거품을 걷어내고 실체를 더듬어 만져본다. 다름 아닌 자존감이라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만원 조금 더 내던 속전속결 동네 미용실에서는 좀체 느껴보지 못한 감정,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리라 짐작한다. 아주 오래전에 네일숍을 예약했다며 들뜬 마음으로 퇴근 시간을 기다리던 여자 후배에게 물었다. 거기 가면 뭐가 그렇게 좋으니, 손톱 같은 거 그냥 집에서 손질해도 되는 것 아냐? 뭘 모르는 말씀이라고 펄쩍 뛰며 후배가 답했다. 거기 가면요 선배님, 누군가 내 손끝을 잡고 정성스럽게 다듬어주는 것만 보고 있어도 좋아요, 그동안만이라도 내가 이렇게 귀중한 사람이구나, 여기게 해 주거든요. 후배의 감정을 많이 지연된 시차로 이해한다.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이건 또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질문인가. 남성 전용 미용실의 저렴한 가격은 머리를 감겨주는 품삯이 포함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남이 머리 감겨주는 것도 그만큼 오래됐다는 소리다.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처음엔 더운 바람이었다가 찬바람이었다가 헤어드라이어의 모든 기능을 쓴다. 혼자서 머리 말리는 요령을 가르쳐주겠다며 친절하게도 거푸 설명하는 미용사에게 입으로만 예, 예, 성의를 보였다. 최대한 힘써보겠지만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아무렴 집에서도 되려고요. 마침내 벗어두었던 안경을 다시 써서 거울을 본다. 아내도 와서 같이 변화를 살핀다. 와, 딴 사람이 됐네.


  루키즘, 우리말로 외모지상주의를 일컫는다. 대한민국은 루키즘이 지배하는 국가인지 아닌지 은밀한 실험에 들어가기로 한다. 내일부터 일터에서 만나는 인연들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마음의 가늠자로 측정한다. 이전보다 매끄럽고 무언가 부드럽다면 그건 순전히 실력 있는 미용사의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 어떠한 극적인 향상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능력우선주의, 실용주의, 합리주의가 작동하는 나라라는 기분 좋은 반증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는 유구한 잠언의 재확인이 될 터다. 결과가 무엇이든 나는 다시는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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