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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01. 2023

마지막 워크숍에 부치며

  전 직장 선배들은 신성한 술자리에서 누가 일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거 술맛 떨어지게 공장 얘기는 하고 그러냐?!” 나무랐다. 나는 우리가 일하는 방송국, 회사의 느낌을 앞세우자면 방송사를 너나없이 피땀 흘려 일하는 생산 노동자들의 일터로서 그저 ‘공장’이라고 칭하는 은유가 좋았다. 위아래 없는 평등한 생업의 현장, 왠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해서 이끌렸다.


  코로나 시국 때부터 내가 속한 회사 본부는 화상 회의 서비스를 이용해 월례 워크숍을 거행한다. 대여섯 명의 팀장들이 업무 안팎의 소식과 사정을 여타 본부원들과 공유하는 순서도 마련돼 있다. 나도 달포 만에 또 몇 마디 지껄여야 한다. 내달이 그믐. 마지막 워크숍은 오프라인에서 치르는 본부 송년회로 갈음할 것 같다. 나름 챙기고 다듬어서 한 마디 떠들려고 한다. MZ들도 많은데 너무 장황해선 안 되겠고, 딱 3분 내외로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발언의 서사를 예비하는 정성쯤은 큰 수고가 아니다.




예상컨대 다음 달인 마지막 12월 워크숍은

본부 송년회로 갈음할 것 같고

오늘이 올해 마지막 비대면 워크숍이라는 생각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2005년 2월 전 직장인 다른 방송사에서 PD로 취직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7월, 우리 방송사에

경력 PD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2005년 취업 당시에는 제대로 규모를 갖춘 방송국이라고는

달랑 지상파 방송사 세 곳뿐이었고

프로그램 프로바이더를 뜻하는 PP,

그러니까 케이블 채널 중에

자체제작이 가능한 곳은,

그래서 입사시험에 도전해 봄직한 데는

역시나 지상파 계열 MPP나

지금은 없어진 O 미디어,

C 미디어그룹의 전신 C 미디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전 직장에서 막내티를 벗을 때쯤

그때만 해도 어설펐던 T 채널이 개국했고

T 채널이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된 건

지상파 방송사의 유력 연출자 집단이 이주해 온

아주 나중 일입니다.


방송법 개정으로 신방 교차 소유가 가능해지면서

중앙 일간지들이 만드는

지상파 방송과 비슷한 케이블 채널,

이른바 종합편성채널이

무려 네 군데가 개국한다고 했고

그때쯤 인터넷에선 유저 크리에이티드 콘텐츠, UCC가 한창 유행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UCC를 올리던 웹페이지가 바로 구글이 만든 유튜브였고요.

더 나중에는 넷플릭스가 생기더니

옥수수, 푹, 웨이브, 티빙 같은 토종 서비스도

앞다투어 생겨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OTT라는 단어가 무척 생소했지요.


이렇게만 들으면 제가 처음 취업준비생이던 때보다

일자리가 몇 배는 늘어난 거 같은데

희한하게 시장은 그때보다 훨씬 쪼그라든 느낌입니다.


전통적 방송사로 흘러오던 자본이 유튜브며, OTT,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막 태동하던

다른 플랫폼들로 마구 누수되는 것 같고,

그게 기분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수치적으로 일자리는 늘었을지 모르나,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방증이겠지요.

  

특히 올해는 방송가에 흉흉한 소식이

무척 많았습니다.

상반기 C사는 전대미문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고,

J사도 하반기 그 대열에 합류했다고 들었습니다.

엊그제 흘러나온 정보로 미루어

K사는 제 또래도 해당될 수 있는

20년 차 이상 대규모 명예퇴직, 신입사원 미선발에

보도 전문 채널들은 때 아닌 경영권 분쟁 등

 이웃집 담장너머 상황이

 간 을씨년스럽지 않을 수 없는

지난 1년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대학문을 나서는 누군가는

스스로 재능과 적성에 이끌려

이런 아귀지옥으로 들어오려고 분투 중이겠고,

그들 중 여럿이 며칠 전

우리 본부에도 출몰했다고 들었습니다.     


모쪼록 음험한 시기를 꿰뚫어 우리 본부원 모두 지난 1년

수고하고 애썼고 우수했고 훌륭했다는 말씀

감히 올리면서

어느 때보다 파고가 높았던 뱃길,

뱃머리에서 진두지휘하느라

분주하고 고단하셨을 우리들의 선장 본부장께도

감사 말씀 올립니다.


몇 명의 뉴페이스들,

그대들의 앞날에 찬란한 햇살이 비추길

지난날의 저를 마주하듯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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