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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28. 2023

아비의 자격

  급성 치수염을 앓았다. 낯선 병 이름 따위 모르고 사는 게 제일이다. 치아의 내부 공간을 치수라고 한다. 그곳에 갑작스레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3대 통증 중 하나로 통한다. 출산, 요로결석과 더불어 극악의 고통이다. 남성인 나는 영원히 산통을 경험할 수 없다. 사실상 양대 통증 가운데 불행히 하나와 맞닥뜨린 셈이다. 충치 때문에 겪는 어지간한 치통과 차원이 다르다. 시리고 욱신거리는 전조 증상이 선형적으로 발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갑자기 폭발적인 고통을 선사한다.


  건설 현장에서 낡은 벽체를 부술 때 ‘오함마’라고 부르는 커다란 망치를 쓴다. 제대로 된 이름은 슬레지해머(sledgehammer)다. 그걸로 한쪽 턱을 끊임없이 얻어맞는 것 같은 통증이다. 알약으로 된 진통제는 전혀 듣지 않는다. 더 있으려니 귀가 아프고 눈까지 아려온다. 야간 진료가 가능한 치과를 어렵게 물색했다. 어떤 정신으로 운전대를 잡았는지 기억도 흐릿하다. 전동 의자에 입을 벌리고 누워 치과 의사와 알현했다. 선생님, 저 좀 살려주십쇼,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나는 건강염려증 경증 환자다. 제 몸 하나는 끔찍이 아낀다는 소리다. 자칫 큰돈 들 수 있는 치과 진료도 부러 미루지 않았다. 지금껏 이 고치는 데 들인 돈이 못해도 중고차 한 대 정도는 너끈히 살 수 있는 만큼일 것이다. 작은 병 키워서 큰 병 고치는 일은 없어야지, 그런 명분으로 치과 드나들길 망설이지 않았다. 불청객, 그것도 갑자기 방문한 싫은 손님인 급성 치수염을 물리치려면 치과 진료는 필수 불가결하다. 아니나 다를까, 뽑고 새로 해 넣느라 또 적잖은 비용을 지출할 참이다.


  아빠 어디 갔었어? 학원 마치고 귀가한 아이가 묻는다. 아빠 이 아파서 병원. 거기 까지다. 자식은 아비의 치통에 무관심하다. 서운해할 자격은 못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난 세기말 즈음. 아버지가 한쪽 볼이 퉁퉁 부어 식사를 거르는 날이 이어졌다. 엄마가 끓여주는 눌은밥에 간장 종지만 곁들여 끼니를 갈음했다. 보다 못한 모친이 치과에 가보시라 권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체 만 체였다. 끙끙 앓지 말고 엄마 말 좀 듣지, 속으로 핀잔한 사정은 나중에 큰 죄스러움이 된다. 때는 IMF 금융위기였고 갑자기 직장을 잃은 아버지는 치과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또래보다 일찍 틀니를 썼다.


  그때 아버지의 치통의 어제 나의 그것과 같은 이유가 아니었기를 세기가 바뀌고도 한참이 더 지나 바란다. 급성 치수염은 찬 것이 아니라 더운 것, 뜨거운 것에 극렬하게 반응한다. 보통의 치통은 대개 찬물을 마실 때 시리고 찌릿하다. 한데 이 고약한 병은 사람이 먹는 대개의 음식이 그렇듯 따뜻한 것이 들어오면 입안 전체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준다. 외려 얼음처럼 찬물을 입안에 머금으면 그것이 체온으로 더워지는 잠깐 동안 통증에서 해방된다. 이 단계가 인간이 치아의 말썽으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마지막 챕터다. 철없던 그 시절 어느 저녁, 아버지가 부엌에서 연신 냉장고 문을 여닫진 않았었는지 기억의 바닥을 들춘다. 그가 끔찍한 고통과 싸우며 지킨 돈으로 나는 먹고 입으며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진료를 예약한 날짜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단다. 주치의가 따로 하실 말씀이 꼭 있으니 보호자를 반드시 대동하라고 일렀단다. 모친은 그 전화를 받고 며칠을 큰 걱정 속에 보내셨단다. 방금 전에 진료를 마쳤는데 아버지 당 조절이 시급하니 가족들이 살펴서 단 것 못 드시게 하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다. 병세가 커진다니 마냥 기쁠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날벼락같은 진료 결과가 아닌 것에 내가 믿는 절대자에게 절대적으로 감사하다.


  세상에는 오늘도 어떤 아비들이 안타깝게 스러져갔다. 한 아비는, 내가 겪었고 누리꾼들이 말하는 몇 가지 통증과 또 다른 차원일 이른바 작열통을 견디며 생때같은 자식을 지켰다. 어린 생명 둘을 자신의 목숨 하나와 기꺼이 바꿨다. 이름이 더 알려진 다른 아비는, 순간으로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선택한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 모두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을 지키는 가장 어진 일까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순간까지 마음 속 저울에 달았으리라.


  고통받는, 그것을 누구보다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드는 모든 아비를 위로한다. 스스로 자격 있는지 차마 자신에게 묻지도 못했을 그 심란한 내면에 언제고 진정한 안식이 도래하길 마음 깊이 바란다. 오늘 솟는 해를 보지 못했을 많은 아버지들의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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