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다퉜다. 솔직하게는 ‘싸웠다’는 표현이 현장과 어울렸다. 같이 산 세월이 초5 올라가는 딸아이 나이만큼이다. 그럼에도 싸움의 계기는 불시에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서로 상처 주고받고, 지옥처럼 어두운 침잠의 시간을 조금 지나 어렵게 또 다짐한다. 우리 싸우지 말자.
그러지 않으려고 딴에는 조심을 했는데 다른 방에 있던 아이가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집안 공기의 파장이 요동치는 걸 감지했는지 울먹이며 방에서 나온다. 시옷자로 한껏 구부러진 입술을 실룩인다. “귀신보다 엄마 아빠 싸워서 헤어지는 게 젤 무섭단 말야...”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려왔다. 얼른 이 소동을 끝내야겠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살아남아 겨우 나뭇등걸에 몸뚱이를 기댄 병사처럼 머릿속이 아득하다. 부정한 생각은 스스로 진폭을 키운다. 사고의 사슬이 이어지고 엉키다 삶이 문득 불행해진다.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잘못이 있었다면 삶의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내와 억지 화해를 하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시커먼 머릿속을 꼭대기에 이고 전철에 올랐다. 연초라 회사일이 바쁘다. 분주하면 그럴 틈이 없을 법도 한데 일순 멈췄다 다시 가는 이 빠진 톱니처럼 되었다. 집에서 치른 전쟁이 자꾸만 플래시백 된다.
집으로 돌아와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벗는데 탁자 위에 아이 글씨가 올라와 있다. 딸아이에게 물으니 학교 화상 수업 숙제 때문에 오늘 낮에 쓴 거란다. 시화가 별건가, 시 있고 그림 있으면 그것이지. 찬찬히 눈동자를 둥글린다.
삶
이 O O
삶이란 달리기야
혼자서 아무리 달려봤자 결승선은 보이지 않지
달리기를 시작해줄 부모님도 필요하고
같이 뛰어줄 친구들도, 옆에서 응원해줄 배우자도
달리기를 하다 잠깐 쉬고 싶을 때를 위해
집도 필요하지
와, 결승선을 넘었다!
이제 편하게 잘래
이걸 네가 썼다고? 몇 번이나 물었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팔불출 같은 얘기겠지만, 어린 여식이 지어 놓은 글귀에 아비가 눈물이 핑 돌았다. 아, 혹시 어제 엄마 아빠 싸운 것이 작품의 영감이 된 건 아닐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오른다. 냉큼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기실 인생을 달리기, 마라톤 같은 달음질에 빗대는 게 초유의 문학적 시도일리 없지만 열두 살 아이가 클리셰를 알리도 만무하다. 그저 스스로 겨우 십 년 남짓 삶에서 오감으로 받아들인 관념의 등식이겠지. 모르는 클리셰는 클리셰가 아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시의 말미를 다시 눈에 넣는다. 아, 결승선이란 삶의 끝, 죽음이겠고 비로소 주어지는 영원한 안식, 편하게 잘 거라는 말이구나. 아빠는 네가 써놓은 ‘결승선’, ‘잘래’ 두 낱말에 공연히 또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