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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18. 2021

죄와 벌

  옆 팀장이 징계를 받는단다. 팀장급 회의 중에 본부장이 꺼낸 이야기에 내가 다 가슴이 철렁했다. 인접 부서 팀원 하나가 업무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했다. 팀장은 ‘지휘 책임 소홀’이라는 죄명으로 같이 벌을 받게 됐다. 본부장 말하길, 가능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잘못의 결과가 명명백백하니 어쩔 수 없이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게 됐단다. 회의 분위기가 찰나에 얼어붙는다. 나도 난처하다. 시선을 어디에 걸어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 다이어리 빈 여백이 유난히 창백하다.     

  회의는 뜻밖에 온화하게 마무리됐다. 본부장이 치도곤을 치르게 된 팀장에게 징계 결과가 나오면 사고 친 팀원까지 불러 비싼 소고기를 사겠다고 했다. 일 하다 보면,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니까, 그것 먹고 털어 버리란다. 상사에게 호된 꾸중을 듣는 것보다야 이상적인 처분이지만 그렇게 얻어먹는 고기가 맛이 날까 싶다. 골판지를 찢어 모래 한 움큼과 같이 씹는 몹쓸 상상을 해본다.     

  회사원이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 바로 인사 징계일 것이다. 처벌의 수위와 별개로 심판대에 오르는 것 자체로 대단히 불쾌하다. 차라리 후딱 벌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면 낫다. 사안의 위중함이 커지면서 부서 분위기가 흉흉해진다. 인사 절차를 위한 서늘한 말과 글, 서류가 오간다. 최종 선고일, 인사 위원회가 열리는 날까지 찜찜한 기분을 이고 다녀야 한다. 사태를 알게 된 이웃 동료들과 서로 불편한 시선을 견딘다.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몇 달일 수도 있는 지난한 시간이 질척이며 흐른다. 지옥이 따로 없다.     

  아, 인사 징계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느냐. 자랑이 아니겠지만 이 몸도 유경험자이니까. 팀원으로서 또 팀장으로서, 두 경우 모두 인사 징계를 겪었다. 두 상황에 처하는 심정이 미묘하게 다르다. 팀원 입장에서는 그저 스스로 원망스럽고 한심하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결국 내 잘못이다. 팀장 볼 면목이 없다. 나 때문에 저 양반까지 생채기가 났다. 죄송하다는 말조차 못 꺼내겠다. 팀장이 돼서 지휘를 잘 못한 죄목으로 벌 받으면 역시나 억울한 마음도 든다. 엄밀히 내 손에서 이루어진 일도 아니고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면 더 속이 쓰리다. 솔직히 사고 친 팀원이 밉다. 오래된 영화 <넘버 3>에서 최민식 배우가 남긴 대사가 딱 떠오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X 같은 말이 어디 있냐, 그 죄는 뭔 죄냐, 결국 사람 잘못이지. 에휴, 그래도 내 새끼로 품고 가야지. 부처의 자애로움을 희구해본다.     

  동병상련. 아파본 사람만 타인의 고통을 안다. 옆 팀장에게 진심을 푹 고아 넣은 위로의 말을 전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설픈 언어가 충심을 가릴까 걱정됐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나, 누구 약 올리는 건가, 재미있는 불구경이라도 났다는 말이냐, 공연한 원한만 살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 뭐? 그저 모른 척해주는 게 제일이다. 별것 아닌 일로 넘겨주고 평소와 다름없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 그것 만 한 게 없다. 직장 생활하면서, 남의 돈 벌다 보면 별의별 일 다 겪는 것 아니냐, 눈빛에 실어 보내면 될 일이다. 아니 어쩌면 무관심이 최선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스치는 징계의 추억.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징계 처분을 받게 됐을 때 처벌의 사실보다 나를 더 분노하게 했던 것이 있었다. 세상에, 징계 결과를 회사 로비 알림판에 대문짝만 하게 걸어둔다. 인사부서에서 도대체 어떤 정책적 의도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잘못된 방법이었다. 일벌백계도 구성원 스스로 마음먹게 해야 옳다. 반성과 심기일전은커녕 모욕감과 복수심이 가슴에 움튼다. 인민재판, 공개처형이 북녘에만 있는 게 아니로구나. 이제 그런 야만적인 풍습이 그곳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 것에 비하면 지금 회사의 첩보작전 같은 일처리, 징계 당사자에게만 서류의 형태로 결과를 통보하는 것은 대단히 신사적이다. 옆 팀장에게 저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저보다는 낫잖아요, 말하려다 역시나 그 입 다물었다.     

  옆 팀장이 오후 반차를 낸 듯하다. 일할 기분이 아니게 된 건지 더 중대한 개인사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회사 문을 나서며 이놈의 회사 생활 더럽고 치사해서 확 때려치우고 말지, 직장인이라면 수천 번도 더 해봤을 빤한 대사를 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인생은 계속되고 벌이는 불가피한 것을.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명한 잠언을 되새길 뿐이다.  

  오늘은 아니게 됐고 내일 오후쯤 실행하려고 한다. 옆 팀장에게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 한 잔 사 와서 오다가 주웠다며 심드렁하니 책상 위에 내려놓아야 하겠다. 다른 말은 일절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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