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이가 스스로,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다독가’라고 내세우거나 떠받드는 것을 경멸한다. 미디어 카오스의 시대에서 고도의 연상작용이 필요한 독서에 심취하는 것이 지조 있는 문화 소비일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자랑거리나 특기가 될 수 없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추앙하는 태도와 시선이 그것을 더 고답적인 대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애주가는 자신의 두주불사를 뽐내지 않는다. 한 잔 한 잔, 한 방울 한 방울 음미할 뿐.
지난주 설 연휴를 내일로 앞둔 날 전에 다니던 회사 후배와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그 회사는 연휴 목전이면 들뜨고 어수선해서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음을 임직원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점심 무렵이면 다들 곰비임비 퇴근하고 없다. 후배는 그대로 얌전히 귀가할까 하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 식사 전이면 같이 하자고, 상암동에서 광화문 금방이라고 기다려 달란다.
순댓국 한 그릇씩 앞에 놓는다. 곁들인 막걸리 사발을 퉁 부딪쳐 막 들이켜려는데 휴대폰이 “깨톡!” 기척을 한다. 누구야, 하고 고개를 아래로 겨눴더니 옆 부서 후배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배님, 오후에 자리 오래 비우시나요...?” 손등으로 입술을 쓱 훔치고 발신 버튼을 눌렀다. 메신저 답신 정도나 기대했는데 곧장 전화가 걸려오니 후배가 적이 당황한 눈치다. 무슨 일이냐, 업무 협조 필요한 거면 얘기해라, 밖이지만 괜찮노라 일렀다. 돌아오는 후배의 답이 전혀 뜻밖이다. “아... 예... 선배님,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명절 앞두고 작은 것 드릴 게 있는데 언제 자리로 오시나 해서요...” 아니, 난데없이 뭘 준다는 것이냐 물었더니 나 주려고 책을 한 권 사 왔더란다.
일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뭘 그런 걸 준비했느냐 나무랐지만 몹시도 고마웠다. 설 선물이라고는 선캄브리아기 삼엽충만큼이나 준 것도 받은 것도 새까만 옛 기억인데 이렇게 감동적인 것은 단연코 없었다. 스피커폰처럼 새어 나온 통화 소리를 엿들은 앞자리 후배가 선배 좋으시겠어요, 알은체하며 사발을 내민다. 야, 형 정말 기분 좋다, 명절 분위기 난다!
어릴 적엔 책 선물이 가장 달갑지 않았다. 프라모델이 최고였고 그것도 아니면 돈으로 주는 게 좋았다. 책 이건 뭐 달달하니 먹을 거도 아닌 것이 숙제거리 받은 것 같고 ‘영 아니올시다’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생일날 집으로 초대한 친구 녀석이 금박지로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받아서 손에 잡는데 그것이 8절지 크기 네 귀퉁이가 반듯하며 두껍고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물건, ‘책’이라고 직감했다. 아마도 창작 동화집이나 위인전쯤 이리라. 친구여, 넌 왜...?!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책 선물에 정말이지 마음이 부푼다. 당신이 나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 당신에게 프라모델도 현찰도, 달달한 먹을거리도 아닌 책을 선물했다면 마음껏 기뻐하시라. 왜냐, 그는 당신을 책 선물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책을 가까이 두는 문명인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꾸준한 수고로 활자를 탐독하고 행간의 세계를 여행하여 그 끝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길 줄 아는 멋스러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선물하려는 이가 서림, 책의 숲 속에서 단 한 권을 뽑아 올릴 때 그 온기 어린 마음을 체감할 수 있는 휴머니스트로 당신을 이해한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후배가 선물해준 책이 무엇이냐.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언젠가 후배가 자신이 애서하는 목록 중의 하나라고 했던 듯도 하다. 표지에 두른 띠를 보니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 세기의 걸작,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프’라는 수식이 붙었다. 박찬욱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는 내 취향을 단서로 삼은 후배의 안목, 그 따뜻한 마음씨가 네모지고 도톰한 물성으로 만져졌다.
나는 이 책을 찬찬히 한입 한입 곱씹어가며 아껴 읽을 셈이다.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읽고 나면 어쭙잖은 감상문이라도 써서 후배에게 답례의 증표로 돌려주련다. 우리 집 작은 방 보잘것없는 내 책장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자리에 꽂아놓고 우연히 시선이 닿을 때마다 고맙고 예쁜 마음을 문득 돌이켜 보려고 한다. 아, 그전에 에밀 졸라의 위대한 유산을 선물 받았으니 ‘졸라’ 맛있는 점심 한 끼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