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Jun 29. 2021

출근에 임하는 나의 자세

   06시 20분, 아내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린다. 그 소리에 내 영혼도 현실 세계로 일순 소환된다. 이제 나의 기상까지 20분 남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설명처럼 내 침대에만 작고 작은 중력이 작용하길 바란다. 정말로 시간이 더디 흐르는 듯도 하다. 난 따로 알람을 맞추어두지 않는다. 엎드려 누워서 왼손으로 휴대전화 등을 잡는다. 억지로 한쪽으로 실눈을 떠 시계 화면을 본다. 두어 번쯤 그러기를 거듭하면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거실 화장실에서 아내가 씻어 내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나는 안방 화장실로 들어선다. 좌변기 겉 뚜껑을 올리고 걸터앉는다. 어제 쓴 에너지원의 찌꺼기를 처리한다. 그 사이 간밤에 세상에 일어난 일은 없는지 휴대전화를 본다. 그때쯤 컴퓨터가 있는 작은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의 고요를 깨는 모터음. 아내가 머리를 말린다. 그 소란을 나의 변기 물 내리는 소리로 덮는다.


  나도 씻는다. 샤워기 머리를 오른손에 쥐고 정수리에 물줄기를 쏜다. 이마와 눈썹, 눈두덩을 지나 광대와 뺨으로 세차게 물이 흐른다. 그때 생각한다. 하, 오늘도 출근하는구나. 출근해야 하는구나. 별 수 없구나. 그러다 문득 먼 옛날 최악의 출근을 복기한다.


  전 직장에서 겨우 2년 차 때였다. 똘똘하고 일 잘한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았다. 저 연차에 저런 업무를 맡겨도 돼? 걱정과 야유를 들었다. 소포모어 징크스. 업무 과실이 생겼다. 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가 담당자라는 이유로 징계에 부쳐졌다. 최종 면접 날 입었던 양복을 오랜만에 먼지 털어 다시 입었다. 오전 10시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라는 인사팀 문자 메시지를 재차 확인한다. 저기 회사 건물이 보인다. 지표에 붙은 시커먼 아가리가 나를 기다린다. 하, 들어가기 싫다. 오늘 하루 겪을 수모와 고난이 빨리 감기로 재생된다.


  회사는 나에게 너무했다. 일벌백계가 아니라 포용과 아량, 용서가 필요한 연차고 나이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마저 씻기를 계속한다. 다른 손으로 샴푸를 꾹꾹 두 번 눌러 받아낸다. 잠시 샤워기를 높은 자리에 걸고 호쾌하게 머리털을 문지른다. 이제 두툼한 비누를 샤워타월에 비벼 거품을 일으킨다. 허리를 숙였다 펴가며 거품 옷을 뒤집어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설인이 되기를 잠시. 다시 정수리부터 물줄기를 쐰다. 물을 잠그고 어젯밤에 쓰고 걸어둔 수건을 집어 든다. 다행히 축축한 기운 없이 잘 말랐다. 씻을 때와 같은 순서로 물기를 훔친다. 벗어놓은 취침 복장을 임시로 다시 입는다. 수건은 목에 두른다. 아직 빗자루처럼 벌어지지는 않은 칫솔을 꺼내 치약을 묻힌다. 앞니부터 시작해서 위턱 오른쪽 어금니, 아래턱 오른쪽 어금니, 위턱 왼쪽 어금니, 아래턱 왼쪽 어금니 순서로 진동에 가까운 왕복 동작을 거듭한다. 혓바닥도 정비한다. 복어처럼 볼을 부풀려 입을 헹군다. 목에 걸어둔 수건을 한 귀퉁이만 그대로 올려 입가를 닦는다.


  작은방으로 건너가려 거실을 가로지른다. 씻는 사이 장모님이 오셨다. 맞벌이하는 우리 내외를 대신해 딸아이를 돌봐주신다. 감사하고 죄송한 출근길이다. 장모님 오셨어요, 비는 안 맞으셨고요. 출근할 옷을 꺼내 입는다. 오늘 나의 전투복. 아내가 먼저 쓰고 바닥에 내려놓은 헤어드라이어를 집는다. 머리를 말린다.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민다. 스킨로션을 뺨을 때려 바른다. 그때쯤 아내가 먼저 집을 나선다. 나 간다, 다녀와, 엄마 갈게. 양말을 꺼내 신는다. 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흰색, 분홍색 알약 두 알을 찬물로 삼킨다. 입김을 불어 안경닦이로 렌즈를 닦는다. 휴대전화와 지갑, 무선 이어폰을 챙겨 든다. 회사 출입증은 목끈을 둘둘 말아 묶는다. 쪽 호주머니에 나눠 넣는다. 마지막으로 안방으로 잠깐 돌아간다. 아직 현실세계로 건너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은 딸아이와 뺨을 비빈다. 장모님, 다녀올게요. 신발을 신는다. 어지럽던 신발들이 현관문 쪽으로 나란히 향했다. 장모님이 아까 들어오시며 만져주셨나 보다.


  집에서 걸으면 십분 여남짓 거리. 전철역까지 걸으며 또 생각한다. 요사이 옛날 최악의 출근길에 맡았던 악취가 콧구멍 밑으로 다시 일렁인다. 이번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억울한 죄목 따위는 없다. 다만, 새삼스럽게 짙어진 부조리와 불합리의 악취.  새로 옮겨 벌써 십 년째 일하는 새 일터에서도 풍년에 풍작인 불의의 향연. 사필귀정은 고서에만 나오는 판타지인가.


  콩나물시루보다 차라리 팔각 성냥통과 닮은 전철에 오른다. 한참을 서서 가기를 부지기수. 어쩌다 앉아 가기는 군인이 별 달기. 그래서 책은 두고 다닌 지 이미 오래. 팔꿈치의 궤적을 살피며 무선 이어폰을 귓구멍에 꽂는다. 오늘은 선곡 리스트보다 그냥 라디오. 유별나게 경쾌한 디제이 음성이 반고리관을 파고든다. 익살맞은 시청자 사연에 피식 웃음이 새기를 몇 번. 이야기 결말은 한참 광고 끝나고 들려준다는데 어느덧 내려야 할 때. 어쩌자고 회사는 전철역 코앞이어서 섭섭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빼서 넣는다.


  회사로 걸어 들어가는 몇 분의 시간. 나는 고된 육체노동을 전두엽에 띄운다. 그래 나는 막노동의 현장으로 간다. 잠깐 한눈팔거나 발 헛디디면 큰일이다. 아찔하게 떨어지거나 어디서 무겁고 날카로운 것 날아들지 모를 위험한 곳으로 들어간다. 있지도 않은 안전모의 턱끈을 조인다. 안전화, 장갑도 있어주면 좋겠다. 사주는 경계한다. 다만 마음만은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로 오늘 하루도 버텨내기로.


  이제는 지표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입을 벌린 차원의 문이 보인다. 아니다. 내가 틀렸다. 나는 전선으로 들어간다. 나는 상륙정에 실린 겁먹은 병사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임박했다. 이제 곧 상륙정 철문이 열린다. 적군 벙커에서 날아와 들이치는 기관총 총알을 피해 죽기 살기로 해변을 벗어나야 한다. 갈지자로 뛰다가 포복으로 전진하는 동안에도 옆구리 지척에 포탄이 날아들지 모른다.


  사랑하는 이들이 스친다. 딸아이, 아내, 연로한 부모, 몇 해 전 혼자되시고 오늘 아침에도 와주신 장모님, 두 살 터울 남동생, 어려서 자식처럼 나를 길러주고 지금은 먼 데 사는 두 이모. 그들의 사랑으로 직조한 마음의 방탄조끼를 단단하게 채운다. 삼십 년 전 아버지가 내 나이쯤 직장에 다닐 때에도 나와 같았을지, 아니면 어땠을지 짐작해본다. 그 마음이 혼란하고 어지럽지만은 않고 애써 가족을 떠올려 견딜 만했기를 나는 바란다. 아, 이십 분 앞서 집 문을 나선 아내의 출근길이 나와 같지 않기를 더 크게 염원한다.


  문을 통과해 안쪽의 세계로 들어선다. 신이여 나와 함께 하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 자가 진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