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의 취향을 점점 선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후 노곤한 어느 때 맞벌이하는 아내가 보낸 깨톡이 울린다. 냉장고가 텅 비어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겠노란다. 뭐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다 응답을 보낸다. 대파. 아내가 의아한 듯 반문한다. 먹고 싶은 게 대파?
난 대파를 좋아한다. 서른 살 넘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대파를 좋아하는구나. 술 마신 다음날 각종 탕으로 속을 달랜다. 시나브로 파 고명 넣는 양이 늘었다. 급기야는 국물 위에 녹색 단층이 생기는 지경이 되었다. 숟가락으로 휘젓기 전까지는 설렁탕인지 해장국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신 차려보니 집에서 스페인 요리로 취급하는 대파 구이를 만들고 있다. 유럽에서는 ‘칼솟타다’라고 부른다. 그거 한 번 먹으려면 아내의 등짝 스매싱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에 또 하나의 취향을 확인했다. 난 술 자체가 아닌 음식과의 조화를 즐긴다. 무슨 말이냐. 주변에 더러 이런 부류들 있을 것이다. “나 안주 안 가리잖아, 멸치에 고추장만 있어도 소주 한두 병 뚝딱!”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다. “내가 주종 가리는 거 봤어?! 아무거나 알콜 들어간 거만 갖다 줘! 취하면 다 술이지.” 더러는 이런 취향도 봤다. “전 술자리 자체를 좋아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술은 잘 못하지만 그것만으로 좋잖아요.” 특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주당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요, 당신은 그냥 술을 좋아하시는 거예요. 앙큼한 거짓말쟁이.
난 술이 세지 못하다. 슈퍼 플라이급 체격이 제아무리 덤벼봐야 1라운드 TKO 패다. 아주 예전 스포츠 피디로 일할 때 운동선수 출신 해설자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은퇴한 왕년의 스타, 한창때 몸이 아닌데도 그야말로 두주불사다. 인간의 몸은 술을 담는 포대다. 크면 많이 담을 수 있다. 그런 술자리는 들어갈 때 기억만 있다. 퇴장의 과정은 모른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 4대 구기종목 해설자들을 두루 겪었다. 사견으로 야구를 수위로 친다. 프로야구 해설위원 김OO 위원님, 건강하시죠?
술과 음식의 조화를 무식한 말로 뭐라고 하더라. 마리아주? 주제에 입만 고급이어서 나도 그런 걸 가린다. 육고기엔 빨간 포도주, 물고기는 하얀 포도주, 튀긴 안주에는 맥주. 그것도 처음에는 탄산 그득한 라거나 에일 맥주가 좋고 한두 잔 이후에는 크림 거품 봉긋한 밀맥주로 바꾼다. 육포에는 위스키가 제격이지. 얼음 탄 온더록 말고 오크향 오롯한 스트레이트로. 위스키 한 모금하고 입가심으로 홀짝이는 흰 우유는 또 얼마나 고소한데. 국물에는 소주지. 의외로 과일 안주가 맥주 말고 소주랑 궁합이 좋다는 거. 가장 취향저격인 건 방어, 고등어처럼 기름진 생선회에 성게알, 생감태같은 해산물 곁들여서 차가운 청주. 이렇게 쓰고 보니 그냥 중독인 걸? 마리아주는 얼어 죽을.
덧말) 제목에 무알콜 맥주가 나오는데 본문에는 일언반구도 없게 됐네요.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