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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7. 2021

캠핑장에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방법

부제 : 조정석 배우가 부른 「아로하」가 싫어진 이유

  캠핑 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터라 유료 캠핑장을 애용한다. 싱글 라이프였다면 산간 오지로 돌아다녔을 터인데. 이른바 ‘노지(露地)’ 캠핑이면 조금 불편해도 호젓한 고독을 만끽하는 게 가능하다. 캠핑장은 화장실, 전기, 수도 등 편의시설이 완비된 것이 장점이다. 좋은 것엔 나만 끌리는 게 아닌 법. 그만큼 이용객이 많아 부대낀다. 바로 옆 텐트가 소란스럽기라도 하면 최악이다. 제아무리 풍광 빼어난 캠핑장이라도 그 캠핑은 망한 거다. 캠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연코 좋은 이웃이다.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감각 기능 중 유일하게 발달한 곳이 청각이다. 장애가 있으면 다른 감각 수용기가 고도로 발달한다던가. 눈이 아주 나쁘다. 중학교 때 이미 마이너스 시력이었다. 안경 바꾸려면 렌즈 값이 안경테 가격 몇 배는 된다. 무려 세 번이나 압축한 특수한 렌즈를 낀다. 일반 렌즈로 달면 너무 두꺼워지고 그만큼 굴절률이 커져서 눈이 콩알만 해진다. 그마저도 안경 없으면 사물의 윤곽과 색깔 정도만 구분한다. 눈 쪽 사정은 그렇고 코나 입은 괜찮으냐. 그것도 그냥 그렇다. 그런 이유로 귀가 밝다. 그만큼 예민하다.     


  캠핑장에서의 소음은 특히 더 괴롭다. 집이나 회사, 그러니까 도심에서의 소음은 익숙하다. 캠핑에 대한 기대는 다르다. 최소한 일상의 것보다 고요하길 바란다. 숲 사이로 부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 졸졸 흐르는 개울, 낮에는 산새가, 밤에는 풀벌레가 만드는 기분 좋은 백색소음을 소망한다. 한데 옆 텐트에서 고성방가에 음주가무까지 곁들인다면? 끔찍한 고통이다. 과학적인 설명까지 가능하다. 텐트는 헝겊으로 만든 커다란 ‘종(鍾)’이다. 그것도 바닥에 붙여 내려놓은. 밖에서 들어온 소리가 텐트 안에서 공명(共鳴)한다. 옆 텐트에서 낸 소리가 그쪽 텐트 안에서 커진다. 그렇게 온 소리가 우리 텐트 안에서 더 커진다. 캠핑장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실 거다. 이른 새벽 옆 텐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리는 통에 아침잠 설쳤던 기억.     


  방송 채널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두 번째 시즌이 얼마 전 종영했다. 시청률도 초대박이었다. 인기의 방증인 것일까. 화제성 높은 콘텐츠는 캠핑장에서도 위력을 과시한다. 극 중 조정석 배우가 동료 의사들과 옛날 대중가요를 커버한다. 유독 혼성그룹 쿨(Cool)의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다. 언젠가부터 캠핑장 이 집 저 집 텐트에서 노래 <아로하>를 틀어둔다. “코즈 유어 러브 이즈 소 스위트, 유 아 마이 에브리띵, 첫날밤에 단 꿈에 젖어~” 후렴구 가사에 인이 박힐 지경이다. 그런 일도 있었다. 옆 텐트에 <아로하> 광팬이 왔다. 밤늦도록 딱 이 노래 한 곡만 무한반복 재생하는데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백 번쯤 들었을 때 도저히 못 참고 가서 얘기했다. 저 옆 텐트에서 왔는데요, 제발 다른 노래 좀 틀어주세요. 제발요..     


  캠핑장 소음에 대해 얘기 꺼냈으니 막간을 이용한 코너를 진행한다. 캠핑장 옆 텐트로 만나면 시끄러운 순위는? 빠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로 랭크를 매겨보자. 가장 조용한 텐트부터 공개한다. 뭐니 뭐니 해도 커플 텐트다. 연인이나 아이 없는 부부에 해당한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뭐가 그렇게 속삭일 말이 많은지 속닥속닥 소곤소곤. 해 넘어가면 일찍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없다. 사람 기척이 없다. 빈 텐트라고 해도 믿겠다. 옆 자리에 젊은 남녀가 와서 텐트를 친다? 이번엔 축복받은 캠핑이다. 마음껏 누려라. 대신에 우리도 눈치껏 조용히 해줘야지. 그다음 순위는? 아이 하나인 부부다. 그 애가 유독 말썽쟁이가 아닌 이상 꽤나 정숙하다. 아이는 그렇다 치고 부부는 양상에 따라 다르다. 대화가 많은 부부라면 조금 늦은 시간까지 말소리가 넘어올 순 있다. 정작 대화가 필요해 보이는 부부는 더없이 고요하다.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내외도 봤다. 캠핑은 왜 온 거지? 그럼 다음 순위는? 아이 둘 이상인 가족이다. 이 단계부터 데시벨이 올라간다. 자매나 남매는 얌전하다. 형제가 소란스럽다. 그런 집은 아이들만 시끄러운 게 아니다. 그 애들 장난치는 것 뜯어말리느라 엄마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린다. 아무개야! 와서 밥 먹고 놀아! 하룻밤 이웃으로 두고 지내면 그 집 애들 이름을 저절로 왼다. 한 번은 옆 텐트로 초등생 삼 형제 가족이 왔다. 긴 얘기 안 하겠다. 아비규환이다. 그다음 순위는? 아이들은 그래도 때 되면 잔다. 아이 딸린 텐트는 밤 되면 어른들 말소리만 나직이 들린다. 여기서부터는 어른들의 영역이다. 어른들이야말로 진짜 소음의 주범이다. 동성 친구 모임은 본격적으로 시끄럽다. 관계 맺은 시간대의 역순으로 소란스럽다. 직장에서 만난 사이는 비교적 조용하다. 대학교보다는 고등학교 친구 사이가, 초등학교 친구 사이라면 볼 것도 없이 소리가 크다. 옆 텐트 멤버를 보니 초중고교를 내리 같이 다닌 ‘찐친’ 사이로 보인다면? 자연과 함께 하는 치유의 여정은 갖다 버리시라. 이런 적도 있었다. 이십 대 후반에 미혼으로 추정되는 여고 동창생 넷이 옆 자리에 텐트를 쳤다. 낮부터 꺼내 드시는 술이 동서양을 넘나 든다. 새벽쯤엔 싸우다 말리고, 기어이 우는데 그렇게 버라이어티할 수가 없다. 이제까지 순위에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음주의 강도다. 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 적당한 술은 관계의 윤활유가 되지만 지나치면 자리 자체를 망칠 수 있다. 캠핑장에서는 이웃 텐트에 엄청난 민폐가 된다. 캠핑장은 술집이 아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 절대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지 않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가져가지도 않는다. 그거 쓰면 음질 좋고 시원하게 잘 들리겠지. 근데 그게 다 남한테는 소음이다. 그래서 핸드폰 스피커로만 듣는다. 음악 재생 눌러놓고 멀찌감치 걸어가서 귀를 대본다. 여기까지 들리나 안 들리나. 말할 때도 조용조용. 텐트 의자에 앉은 채로 놀러 나간 딸아이 이름 외치는 일도 없다. 부르지 않고 가서 데려온다. 그럴 일 잘 없지만 아이 목소리가 커질 때에도 바로 주의시킨다. 딸, 목소리 낮춰야지. 옆집에서 시끄럽잖아. 사람 심리가 그렇다. 삼 형제 노는 텐트도 부모가 그냥 방치하는 것과 그래도 중간중간 다그치는 것 보는 게 마음이 다르다. 애들 시끄러운 거 저 집 엄마 아빠가 알기는 아시네. 너그럽게 이해한다. 아, 깜빡할 뻔했다. 무엇보다 절대로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듣지 않는다. 그건 차라리 고문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캠핑장에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방법? 비결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나부터 좋은 이웃이 되는 거다. 모든 게 작은 배려에서 출발한다. 내가 불편한 것을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것. 역지사지는 캠핑장에서도 절실하다. 이타심이라는 게 별 것 없다. 나만 편하면 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는 게 선행의 시작이다. 또 내가 좋은 이웃이 돼야 할 말도 생긴다. 옆 텐트에서 밤늦게까지 음악 틀어놓고 술 마시며 떠든다. 엄연히 캠핑장 매너타임(여러 캠핑장에서 밤 열시나 열한 시 이후에는 텐트 밖에서 소음을 내는 행위를 금지한다.)이 있는데도 무시하고 있다. 내가 매너가 있어야 타인의 노매너를 탓할 수 있다. 옆 텐트에서 왔는데요, 실례지만 밤늦었는데 조금만 목소리 낮춰주시죠. 물론 직접 상대하지 않고 캠핑장 관리실에 연락하는 것도 마찰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다음 캠핑 때는 더 좋은 이웃이 되기로 한다. 타의 모범이 되리라. 저것이야말로 타인을 배려하는 바람직한 캠핑이구나. 아니 온 듯 간다더니, 저렇게 지내다 가는 것이 캠핑의 완성이구나. 대자연 속에서의 오롯한 휴식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그 원대한 목표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가리라. 그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 뭐? <아로하> 반복 재생하지 않는 것! 어둔 불빛 아래 촛불 하나, 와인 잔에 담긴 약속 하나~ 으으!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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