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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25. 2021

실용주의자가 겨울 캠핑하는 방법

부제 : 겨울 캠핑은 시즌 오프가 아니라 시즌 오픈

  캠핑 족에는 오랜 두 사조(思潮)가 있다. 감성주의와 실용주의다. 캠핑 용품 구매 성향에 따라 나뉜다. 감성주의 캠핑 족들은 눈으로 보기에 예쁜 물건을 우선 고려한다. 캠핑의 공간이 되는 아웃도어, 즉 흙, 돌, 나무와 어울리는 베이지색 혹은 카키색을 선호한다. 소위 ‘깔맞춤’이 기본이다. 텐트는 물론 탁자며 의자, 침낭과 버너 같은 소품까지 색깔 하나로 통일한 차림새를 보면 제법 근사하긴 하다. 이른바 ‘갬성’인 것이다. 실용주의 캠핑 족들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최대한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산다. 그러다 보니 색상이 제멋대로다. 어수선하다 느낄 법한 것을 다양성의 추구로 승화한다. 가지고 다니는 캠핑 용품도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보기에 예쁜데 크게 쓸 일은 없는 소품은 선택하지 않는다.     


  가실 이 같은 갈래도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대융합의 시대 아닌가. 새 시대의 캠핑 마니아들은 흑백논리를 경계한다. 감성주의 캠핑 족들도 그 안에서 최대한 실용성을 추구한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면 홍상저가(紅裳低價)이기도 하다. 예쁜 것 중에서 그래도 저렴한 것을 찾는다. 몇 번 써보고도 영 쓸모없는 소품은 ‘당근 시장’에서 처분한다. 실용주의자 역시 최소한의 심미성을 의식한다. 그들 나름대로 감성과 낭만을 찾는다. 오밀조밀 예쁘지 않아도 좋다. 투박한 가스 랜턴 하나 켜놓고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색상도 브랜드도 제각각인 의자를 모아놓았지만 ‘불멍’의 시간도 빠뜨리지 않는다.     


  나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다. 인생의 모토가 그렇다. 무어든 허례와 허식을 싫어한다. 형식에 매몰되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핵심으로 파고 들어가 사안의 본질에 닿기 위해 노력한다. 격식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게 성미에 맞는다. 캠핑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용도에 맞는 물품만 알맞게 구비한다. 브랜드나 색상 따위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짐도 단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식구가 다니려니 SUV 승용차 트렁크가 꽉 찬다. ‘테트리스’ 신공이 필요하다.     


  실용주의 캠핑 족의 겨울 캠핑 노하우를 공유한다. 먼저 차에 싣는 용품부터 열거한다. 겨울 캠핑의 필수품, 난로는 덩지가 커서 트렁크에 싣지 못한다. 캠핑용 난로를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운다. 기름통은 시트 밑 발 공간에 둔다. 트렁크를 열어 캠핑용 수납 상자 두 개를 깊숙한 데 싣는다. 버너, 코펠, 조리도구, 충전식 랜턴, ‘써큘레이터(Circulator)’라고 굳이 부르는 선풍기, 화로대 등 소품들이 들었다. 상자 위에 텐트를 올린다. 겨울 캠핑에는 거실형 텐트를 쓴다. 추우니까 텐트 안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거실 공간이 필수다. 텐트 위에 전기 매트 두 장을 쌓는다. 접이식 탁자, 의자 세 개를 트렁크 바깥쪽에 길게 눕힌다. 아이스박스와 침낭 세 개를 실으면 트렁크가 꽉 찬다. 여남은 빈 공간에 냉장 필요 없는 먹을거리를 담은 비닐 가방을 구겨 넣는다. 아직도 차에 못 태운 물품들이 있다. 잘 때 등 배기지 말라고 쓰는 에어 매트리스는 뒷좌석 구석에 싣는다. 아내와 아이가 그 옆에 나란히 앉는다. 이쯤 되면 차가 터지기 직전이다. 실용주의 캠핑 가족도 이렇게나 짐이 많다.     


  겨울 캠핑은 난방 대책이 급선무다. 난로는 필요 불가결이다. 캠핑용 난로는 등유 난로와 팬히터로 크게 나눈다. 등유 난로는 전기 없이 쓸 수 있고 팬히터는 그렇지 못하다. 난 등유 난로를 쓴다. 기름통은 대체로 10리터 들이가 많다. 1박이면 한 통, 2박이면 두 통 준비하면 적당하다. 캠핑장 도착하면 텐트 치기 전에 난로를 내려 기름부터 채워준다. 난로 심지가 기름에 젖으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이때 심지는 레버를 돌려 올려둔다. 그래야 심지를 타고 기름이 올라온다. 텐트를 완성하면 거실 가운데 난로를 놓는다. 난로 위쪽 천정에는 선풍기를 설치한다. 집에서 쓰는 바닥 둥그런 선풍기 말고 머리만 돌아가는 캠핑용 선풍기를  따로 판다. 선풍기 틀어서 텐트 안 공기를 대류 시키지 않으면 허리 위로만 뜨겁고 그 밑으로는 냉장고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반드시 준비한다. 난로의 불완전 연소 때문에 만들어지는 일산화탄소는 정말로 무시무시하다. 무색무취여서 들이마셔도 알아채지 못한다. 얼마 전에도 텐트를 꽉 닫은 채로 난로를 피우고 자다 일가족이 한꺼번에 숨진 대참사가 뉴스에 나왔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최소한 두 대 사두시라. 액정화면 달린 비싼 것까진 필요 없고 각각 다른 회사 제품으로 사면 좋다. OEM 생산하는 중국 공장이 같아서 속을 열어 보면 브랜드만 다른 경보기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달랑 한 대인 것보다는 낫다. 하나는 거실 허리 높이에 다른 하나는 침실 텐트 머리맡에 둔다.     


  난로 불을 켜면 텐트 안이 쉬 건조해진다. 조금 있으면 눈이 맵고 뺨이 따갑다. 난로 상판 위에 물 담은 주전자를 두면 적당한 습도가 유지된다. 이 정도면 겨울 캠핑의 필요조건은 갖춘 셈이다. 여기에 충분조건까지 더할 수 있다. 겨울에는 추워서 텐트 앞문을 맘껏 열어두기 어렵다. 난방 효율도 확 떨어진다. 기름 낭비다. 문을 닫으면 시야가 제한된다. 부러 산야로 나온 의미가 없다. 진퇴양난이다. 이때 활약하는 것이 ‘우레탄 창’이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두꺼운 비닐로 만든 천막이다. 텐트 문을 말아 올린 상태에서 비닐 천막으로 막는다. 난방 열기도 지키면서 바깥 보기가 가능하다. 고급 맨션의 통유리 창이 부럽지 않다. 눈발이라도 날려주면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다 갖추어졌으니 필요충분, 안성맞춤인 겨울 캠핑이다. 겨울 캠핑이 피부로 주는 느낌은 남다르다. 밖에는 눈 날리고 추운 겨울 날씨인데 텐트 안으로만 들어오면 훈훈한 기운에 사르르 몸이 녹는다. 외투에 묻은 눈 툭툭 털고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서는 겨울 배경 영화의 흔한 장면을 캠핑장에서 연출할 수 있다. 안경잡이인 나는 텐트 문 열고 들어올 때 렌즈에 김 서리는 순간까지 좋아한다. 앞 단락에서 얘기한 우레탄 창으로 밖에서 안을 보면 성냥팔이 소녀가 그토록 동경했던 성탄절 부잣집 거실의 풍경이 된다. 벽난로 대신 캠핑용 난로가 은은하게 불을 밝힌다. 겨울 캠핑의 텐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락함, 따뜻함, 오붓함은 그 모든 성가신 수고를 감당하게 한다.     


  먹는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숯불 바비큐는 추천하지 않는다. 텐트 안에 숯불 화로를 들이는 건 난로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다. 일산화탄소 공장이다. 텐트 밖에서 고기를 구워오는 것도 고역이다. 그러지 말고 편하게 텐트 안에서 팬이나 ‘그리들’을 이용하시라. 우리네 무쇠 솥뚜껑 뒤집은 것처럼 생긴 둥그런 주물 팬을 그리들이라고 부른다. 어묵탕이나 샤부샤부 같은 국물 요리도 제격이다. 겨울밤 텐트 안에서 호로록 마시는 따끈한 국물은 그야말로 ‘국물이 끝내줘요’다. 꼴에 미식가라고 육해공 조합을 따진다. 1차로 소고기 먹었으면 2차는 생선회로 흐르는 코스를 좋아한다. 닭갈비 먹은 다음 곱창전골 따위의 진행도 훌륭하다. 마무리는 라면이다. 캠핑장에서 끓인 라면은 군대 행군 중에 먹던 것과 비견할 만하다. 디저트로써의 라면은 세상 온갖 산해진미를 무찌른다. 천하무적이다.     


  군대 얘기 나와서 말인데 실은 나는 추운 것이 질색인 사람이다. 겨울 혹한기 훈련에서 기를 쓰고 열외하려고 했었다. 물론 실패했지만. 야외 활동은 무조건 봄 아니면 여름이다. 그중에서 한여름 밤의 열기가 내 취향이다. 얼어 죽는 사람은 봤어도 더워 죽는 사람은 잘 못 봤다. 한데 캠핑으로 장르를 바꾸면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여름 캠핑은 최악의 고행이다. 여름에 실시하는 군대 유격훈련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텐트까지 쳐야 한다. 난방은 난로로 해결할 수 있는데 냉방은 답이 없다. 선풍기 몇 대로는 역부족이다. 최근에 캠핑용 에어컨도 나왔다고 하던데 그건 아무래도 ‘투 머치(too much)’다. 에어컨까지 휴대하는 캠핑을 캠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럴 거면 쾌적한 호텔을 가는 게 낫다.     


  이상의 이유로 겨울은 캠핑의 백미다. 날씨 추워지면 캠핑 다 다녔네, 하고 시즌 오프를 선언하는 캠핑 족도 많다. 다시 생각해 보시라. 겨울은 시즌 오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시즌 오픈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만 제거하면 전에 모르던 낭만과 감성을 제공한다. 우리 모두가 감성주의 캠핑 마니아가 될 수 있는 계절이다. 다른 얘기로, 겨울 캠핑의 경향을 보면 캠핑장 한 군데를 정해서 아예 한두 달 텐트를 상시 설치해놓는, 소위 ‘장박’ 캠핑이 유행이다. 나랑은 맞지 않는다. 난 텐트 치고 거두는 게 수고스럽더라도 이곳저곳 색다른 풍광을 즐기는 걸 선호한다. 한 자리에서든 돌아다니면서든 겨울 캠핑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모진 세상으로 나가서 고된 하루를 살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밥 지어먹으며 느끼는 행복감과 안도감, 말 그대로 식구(食口)로서 누리는 그 집약적 체험을 이 겨울 꼭 한 번 가져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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