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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06. 2021

중년 오타쿠 형제가 건담 프라모델 조립하는 방법

부제 :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건담인데예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건담인데예. 영화 <친구>의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란 우스갯소리. 고등학교 교사로 분한 배우 김광규 씨가 불량 학생을 연기한 배우 유오성 씨 볼을 꼬집으며 묻는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건달인데예. 이게 원작 대사다. 이걸 ‘건담’으로 바꿨다. 철 지난 허무 개그랄까. 아빠가 로봇이라니. 미래 세계에서 온 문제아란 말인가. 건담한테 생식 기능도 있었던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누리꾼들의 유머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 건담을 모르는 분도 있겠구나. 에이,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데. 진짜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알려드린다. 1979년에 일본에서 처음 방영한 티브이 애니메이션이다. <기동전사 건담>이 정식 작품명이다. 건담은 작중에 등장하는 사람 모양의 로봇 병기 이름이다. 나 같은 ‘오타쿠’들 사이에선 최초의 ‘리얼 로봇’으로 통한다. 리얼 로봇은 또 무엇이냐. 마징가 제트, 태권 브이처럼 구동 원리도 없이 덩치만 큰 옛날 로봇을 ‘슈퍼 로봇’이라고 부른다. 리얼 로봇은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만들어질 법한 ‘진짜 같은(real)’ 로봇이다.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는 친동생이 톡을 보내왔다. 엉아, 이거 봐라, 사줄까 묻는다. 뭔데 그래 하고 첨부된 인터넷 주소를 열었다. 웬 온라인 쇼핑몰이다. ‘144분의 1 사이즈 퍼스트 건담 RX 78-2 모델’ 특가 판매. 어릴 때 동생이랑 조립하고 놀던 건담 프라모델을 싸게 판다. 싸긴 싸네. 어릴 때는 동네 문구점에서 보통 천 원, 비싸면 삼사오천 원이었다. 프라모델 조립 취미가 있는 지인한테 들으니 지금은 한 뼘 크기 모델도 몇 만 원이 훌쩍 넘는단다. 그 얘기 듣고 접었다. 저거 집에서 조립하고 있으면 애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몇 대나 맞으려고. 한데 동생이 보여준 건 훨씬 싸다. 욕심난다. 그래, 내 것도 주문해주라 동생.     


  며칠 있으니 또 동생이 톡으로 부른다. 집에 건담 왔단다. 내 몫 찾아가란다. 퇴근길에 들르겠노라 일렀다. 들러서 찾아갔다. 형제의 우애가 빛나는 순간이다. 키덜트, 우리말로 애어른 형제다. 몸은 자랐으되 마음은 유년기에 멈췄다. 일전에 내 정신연령이 대학교 3학년 2학기쯤에서 성장을 그만두었다고 고백했다. 그때도 더 솔직하게 털어놓았지만 중학생쯤에서 멈춘 게 맞는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이 어른의 몸 안에서 늙어간다. 더 안타가운 건 그 어른의 몸이 어른스럽게 크지도 않다는 점이다. 삼십 년도 지나서 손에 쥔 프라모델 상자가 흥분을 일으킨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밥 먹고 조립해야지.     


  씻고 밥 먹는다. 맛도 모르고 털어 넣었다. 거실 탁자 위에 프라모델 상자를 올린다. 티브이 거실장 서랍에서 녹슨 니퍼를 꺼낸다. 아내에게 여자들 손톱 손질할 때 쓰는 ‘줄’ 비슷한 것 있냐고 물었다. 왜, 그건 뭐하게 하며 탁자 위 물건을 본다. 이건 또 어디서 사 왔대 하며 미간을 찡그린다. 찾던 걸 가져다준다. 마지못해. 오, 그래 바로 이거. 딸아이도 관심을 보인다. 아빠 이게 뭐야? 응, 아빠 어렸을 때 갖고 놀던 거. 상자 표지 그림을 슬쩍 보더니 금방 시선을 거둔다. 뭐 이런 걸 갖고 놀아. 살짝 삐쳐서 응수한다. 너 인형 좋아하는 거랑 같지 뭐!     


  언박싱. 상자를 열었더니 사출 성형된 플라스틱 부품이 크고 작은 창틀에 매달려 누웠다.  전문용어로 ‘런너(Runner)’라고 부른다. 나 어릴 때는 한 가지 색이었다. 이건 흰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표지에 그려진 로봇 배색 그대로다. 옛날에는 에나멜페인트를 돈 주고 사서 붓으로 일일이 색칠해야 했다. 그마저도 서툴러서 여기저기 번지기 일쑤다. 페인트 살 용돈도 잘 없었다. 최신 기술은 놀랍다. 조립만 하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로봇 자체가 된다. 런너에서 떼어내는 것도 간단하다. 굳이 니퍼 쓸 일도 없다. 손가락 끝으로 힘만 살짝 주면 톡톡 떨어진다. 떼어낸 부분에 돌기 같이 지저분한 것도 조금만 다듬으면 된다. 조립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좁쌀처럼 작은 부품이 다른 것과 체결될 때마다 저절로 경탄이 나온다. 와, 이게 이렇게 붙는다고? 합쳐서 이 부분이 된다고? 무엇보다 본드가 전혀 필요 없다. 힘쓰지 않아도 착착 기분 좋게 접합된다.     


  머리를 만들고 몸통을 조립한다. 왼팔, 오른팔, 왼다리, 오른 다리 순으로 만든다. 골반을 만들어 다리를 끼운다. 몸통에 머리와 양 팔을 붙인다. 상반신과 하반신을 연결한다. 마침내 인체 형상을 완성한다. 로봇 중에서도 ‘안드로이드’다. 사람의 모양을 닮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그렇게 부른다. 사람 중에도 이렇게 비율이 훌륭한 인간은 잘 없다. 조막만 한 머리에 팔다리가 길쭉길쭉하다. 십 등신도 훨씬 넘는다. 어깨는 떡 벌어져서 허리는 개미처럼 잘록하다. 똥배는 당연히 없다. 그런 건 사십 대 아저씨한테나 있는 거다. 아, 찔려. 완성하고 보니 유년시절 왜 그토록 건담에 열광했는지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오른다. 이거였어, 완벽한 신체. 나에게 없는 것. 결핍은 선망의 대상으로 화한다. 땅꼬마에게 우뚝 선 건담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구 따위 지키거나 말거나 관심 없고 그저 잘 생겼다.     


  어릴 때 미처 못 했던 사유도 따라온다. 완성하고 보니 이게 다 사람 갈아 넣어서 만든 거다. 그냥 몸으로 때운 것도 아니고 고도로 과학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다. 제조사가 일본 회사니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 만들었을진대 반일의 감정을 이긴다. 이 양반들 머리가 기가 막히게 비상한 분들이네. 삼십 년간 연마한 노력 외길 인생이다. 뭐? 나카무라 상이 장난감 회사 다닌다고? 아니 동경대 졸업한 수재가 승승장구할 줄 알았더니 뭐 그런 델 다닌데? 설마 부모 형제, 배우자와 자식, 이웃들로부터 그런 평가는 받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일본의 장인 문화가 그런 토대 위에 있지 않다고 들었다. 수학적, 과학적 연구의 경지만 보면 미 항공우주국에서 우주왕복선 만드는 연구진 못지않다. 한국 중년 아저씨의 향수를 위해 모래알처럼 많은 밤을 지새웠을 나카무라 씨에게 마음 깊은 경외를 표한다.     


  완성한 건담의 팔다리를 만져 자세를, 아니 ‘짜세’를 잡는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동생에게 보냈다. 완성! 잠시 후 응답이 온다. 이야, 어릴 때 그대로네. 아니 훨씬 멋있네 ㅋㅋ 이러고 있는 걸 아내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뒤통수가 뜨겁지만 모른 체한다. 핸드폰으로 후속작 출시 계획을 검색한다. 오, 내년 초에 다음 시리즈가 나온다. 이것도 사야지. 돈 드는 취미가 또 생겼다. 걱정 마시라. 배송료 포함 만 원 안팎이다. 형제에게 유년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엄마, 아부지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가깝고 먼 나라 일본의 프라모델 연구원께도 감사를 전한다. 하루빨리 한일 관계가 좋아지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먼저 인정할 건 좀 하셔야죠. 아, 당신은 건담 말고는 모르신다고요. 인정. 딸아이 친구가 이렇게 묻지 않을까 싶다. 너희 아빠 뭐하니? 건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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