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바다를 표류한 나의 스테이플러, 그리고 도깨비

by Hoon

오래된 물건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때가 있다. 내 낡은 자동차가 그렇고 손때 묻은 통기타가 그렇다. 우리나라 도깨비 설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안다. 오래 쓴 싸리 빗자루나 절굿공이, 도리깨 따위에 어쩌다 사람 피가 묻는다. 그러면 그것이 어둑한 밤 도깨비로 변한다. 학교도 다니지 않던 아주 어릴 적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어느 여름밤에 해준 얘기다.


전 직장 후배가 뜬금없이 메신저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이게 뭐야, 하며 열어보았다. 웬 스테이플러(Stapler), 한자어로 지철기(紙綴器) 하나가 프레임을 채운다. 아니 이 엉뚱한 후배 녀석은 뭔 이런 사진을 보냈대. 엄지와 검지를 벌려서 사진을 키운다. 엇, 이거 뭔지 알 것 같다. 사진 속 사물의 의미를 인식하는 사이 후배가 메시지를 보낸다.


후배) 형 이것 보셔요! ㅎㅎ

나) 대박!!!

후배) 제가 쓰고 있었어요. 형 가는 거 싫었나 보네. ㅎㅎ

나) 깜짝 놀랐다 야. 그게 아직도 멀쩡히 거기 있다니. 신기하다!

후배) 저도 모르고 있다가 방금 알았어요. 여기 이 글씨는 뭐지 하고 보다가요.

나) 옛날 생각나는구먼 ㅋㅋ


전 직장, 그러니까 지금은 경쟁사가 된 방송사를 다닐 때 쓰던 스테이플러다. 스포츠 피디로 일할 때다. 경기 현장에 가서 중계차에 탑승하지 않으면 회사에 잔류한다. 남아서 부조정실 진행을 맡는다. 중계차가 보내오는 현장 그림과 소리에 경기 기록, 관련 정보 등을 담은 자막 CG(컴퓨터 그래픽)나 배경 음악을 얹는다. 중계방송 앞뒤에 노출하는 타이틀, 광고 영상도 제어한다. 이상의 상세한 스케줄을 인쇄한 종이를 큐시트(Cue-sheet)라고 부른다. 큐시트와 함께 CG 리스트, 경기 관련 데이터를 잔뜩 출력해서 부조정실에 갖고 들어간다. 종이 뭉치를 철하려면 스테이플러가 필수다. 사무실 스테이플러가 자꾸 없어졌다. 피디 선후배들이 쓰고 갖다 버리는 건지, 옆 팀 작가들이 가서 엿 바꿔 먹는 건지. 공금으로 몇 개 사다 두면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에라, 내 전용 스테이플러를 한 대 사비를 들여 사 왔다. 학용품에 이름 써놓는 초등학생처럼 소유주를 밝혀두기로 한다. 마침 자료실 직원이 ‘스티커 라벨기(스티커로 된 띠에 간단한 글자를 새길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다. 내 이름을 풀어쓴 글자를 스티커에 새긴다. 그걸 스테이플러 옆구리에 붙인다. ‘내돈 내산’ 스테이플러다. 내 전용이다. 사라진 스테이플러 찾는 거 이제 안녕이다. 회의 탁자 위에 두지 않고 내 책상 서랍에 따로 보관한다. 회사 앞 사무용품점 매대에 누워있던 흔한 스테이플러 중 하나가 내 이름을 달고 내 물건이 되었다. 인연의 시작이다. 김춘수 선생의 시 「꽃」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면 ‘오버 센스’ 일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다. 퇴사를 결심했다. 회자정리의 순간이 왔다. 거자필반은 생각하지 않았다. 훌훌 털고 낯선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책상을 비운다. 편집용으로 쓰던 비디오테이프는 재사용을 위해 자료실에 반납한다. 쓰레기통을 가까이 부른다. 서랍을 열어 자질구레한 것들을 털어서 쏟는다. 버리기 아까운 것들도 있다. 쓱 남기고 가면 누군가 가져다 쓸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 것들 사이에 스테이플러가 섞였나 보다. 그랬던 것이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다 후배에게 갔다.


스테이플러의 나이는 못 해도 열 살이다. 나는 전 직장을 십 년 전에 나왔다. 퇴사 전에 사다가 얼마간 잘 썼으니 스테이플러의 연령은 실제로는 그 이상일 것이다. 문득 스테이플러의 지난 생애가 어떠했을지 상상한다. 내가 퇴사한 다음 날 피디든 작가든 누군가 텅 빈 내 책상을 본다. 한쪽 구석에 여남은 사무용품을 발견한다. 그날도 방송은 계속된다. 스테이플러가 필요하다. 저기 어제까지 일하던 동료가 남기고 간 스테이플러가 있다. 이제 주인 없는 물건. 아무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쓴다. 그렇게 위치가 바뀐 스테이플러는 다시는 주인의 책상 서랍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김 작가의 손에서 박 피디의 손으로, 프린터 위에서 회의 테이블로, 회사 업무의 밀물 썰물에 따라 이리저리 떠다닌다. 배속이 텅 비면 누군가 와서 침을 채운다. 스테이플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편의를 위해. 편집실이든 녹음실이든 어디서 중간에 실종됐대도 이상할 게 없다. 어떤 정기 인사이동 때에는 팀 위치를 크게 바꾼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그때 없어졌어도 자연스럽다. 기어이 고장이 나서 누군가 심드렁하게 쓰레기통으로 골인했을 뻔도 하다. 그 모든 시련과 위기를 나의 스테이플러는 여태 견뎌냈다. 장장 십 년 넘게.


새 주인이 된 후배에게 당부한다. 전 주인이 누군지 알았고 이제 네 물건이 됐으니 아껴서 써라. 잃어버리지 말고 남 주지도 마라. 거기 허리에 내 이름이 쓰여 있다. 그 스테이플러가 이 형님이라고 생각하고 막 굴리지 말아라. 벌써 십 년 넘게 썼지만 틈틈이 닦고 조여서 천수를 누리게 해라. 잘 쓰다가 어느 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고이 분리수거 통으로 모셔라. “그, 그렇게 까지요, 형?” 후배가 묻는다. “매일 인사 올리고 두 손으로 받들어 쓰라고 시키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 내가 답한다.


희한하게 스테이플러 쓸 일이 잘 없다. 조직 위계에서 겨우 부실한 허리쯤을 맡고 있지만 분명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십여 년 전에는 아래 연차 피디로서 방송에 필요한 서류 열심히 만들어내느라 스테이플러를 많이 썼다. 요즘은 후배들이 만들어준 초안을 주로 받아보는 입장이 됐다. 내가 한 번 더 갈무리해서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만 스테이플러를 꺼내 쓴다. 내 이름 써놓은 전용 스테이플러 같은 건 없다. 사무실 여기저기 많고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쏜 뻗으면 아무 데나 있다.


내 이름 써놓은 스테이플러 쓰던 시절을 추억한다. 그때의 나는 치기 어렸다. 거칠고 서툴렀다. 이상은 드높고 현실은 시궁창 같았다. 그 모든 부정적 소회를 단 하나의 사실이 만회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젊고 열정적이었다. 이마에 잡힌 주름살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안과 밖으로 많이 변했다. 사진 속 스테이플러만 그때 그대로다. 스테이플러엔 내 젊은 날이 흠뻑 묻었다. 후배에게 스테이플러의 안위를 맡긴 이유다.


오래 쓴 물건에는 왠지 신령한 기운이 깃든 것 같다. 전 직장인 그 방송사 야심한 밤에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얘기는 없는지 몽상한다. 2021년판 도깨비 설화, 십 년 전에 퇴사한 어느 피디가 쓰던 스테이플러를 클로즈 업해서 엔딩 컷으로 쓰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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