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장인어른 제사가 있다. 장인어른은 투병 끝에 5년 전 돌아가셨다. 우리 식구는 그때부터 매년 새해가 밝으면 곧 지나서 슬픔과 마주한다. 슬픔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로 조금씩 옅어진다. 그렇지만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친자식은 아닌 솔직한 나의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아내의 슬픔은 어쩌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우리 집안, 그러니까 본가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부모님은 물론, 많지 않은 친척 모두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는다. 덕분에 엄마나 이모들은 제사상 준비하는 수고를 떠안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고 돌아가신 어르신들 기일에 특별히 뭘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은 사람들끼리 잘 살아간다. 그런대로 좋은데 싶다가도 문득 헛헛한 것도 사실이다. 진짜로 어떤 날 조상님 혼백이 찾아왔다가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는 성화를 내고 되돌아가시는 건 아닐지.
장인어른은 장남이셨다. 처가는 우리 집보다 뼈대 있는 집안이다. 장인어른 살아계셨을 때도 장모님은 집안 어른들 제사를 때마다 챙기셨다. 우리 엄마보다도 작은 몸으로 아침 일찍 장을 보신다. 그렇게 장만한 재료를 일일이 다듬고 종일 손수 제사 음식으로 만드신다. 지금은 눈치와 요령이 생겨서 그렇게 안 하지만 신혼 때는 제삿날마다 검은 양복 차림으로 처가에 갔다. 절하고 제삿밥 먹기만 하면 되는 나도 어떤 날은 성가셨다고 고백한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는 장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내는 제사 음식 준비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작은 어머니와 고모들을 미워한다. 하얀 돈 봉투로 갈음하는 손길을 매섭게 쏘아본다.
멕시코 명절 중에 ‘죽은 자의 날’ 혹은 ‘망자의 날’로 부르는 것이 있다. 매년 10월 말일부터 11월 2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그동안 사람들은 해골 모양의 장식물을 만들고 해골 분장으로 퍼레이드를 즐긴다. 집 안에는 조상들의 사진과 해골 장식물, 주황색 꽃잎으로 제단을 만든다. 모두 돌아가신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몹시 떠들썩한 그야말로 국가적인 축제다. 우리나라 제삿날과는 영 딴판인 분위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본 분이라면 바로 아실 거다.
<코코>에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등장한다. 만화영화 속에서는 진짜 죽음이 따로 있다. 육신이 죽는 것으로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은 단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절차다. 그곳에서도 나름대로의 삶은 계속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어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게 될 때 진짜 죽음이 찾아온다. 그 순간 저승 세계의 영혼은 쓸쓸하게 바스러진다. 존재가 멸(滅)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죽음 이후의 삶이라면 우리 집 조상님들은 불안해서 도통 편하게 지내지 못하실 것 같다. 이 놈의 자식들 날 기억하는 녀석이 하나라도 있는지 없는지. 죄송한 마음이다.
우리나라에도 죽은 자의 날 비슷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 힘든 장모님을 위해서도 조상님 어려운 줄 모르는 우리 집안을 위해서도. 그것이 저승에서의 인권 실현이라고 믿는다. 누구는 좋은 가문에 속해서 죽어서도 고깃국에 흰쌀밥 먹고 오고, 다른 누구는 후손들이 나 죽은 날도 까먹어서 식은 밥도 못 얻어먹고. 이건 불공평하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차별 없는 사후 세계를 소망한다. 산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다. 장모님처럼 일 년에 몇 번씩 제사상 차리는 거 녹록지 않은 분들이 많으실 줄로 안다. 깔끔하게 몰아서 한 번에 해치우자. 망자 한 분도 빠짐없이 한 날 한꺼번에 챙겨드리는 것, 그게 베스트라고 본다. 멕시코라는 나라는 그런 면에서 대단한 선진국이다.
아내는 퇴근하고 곧바로 본인의 본가인 나의 처가로 간다. 나는 나의 본가로 가서 딸아이를 차에 태워 처가로 가야 한다. 장인어른께 두 번 큰절하는 것으로 일 년 만에 안부 인사를 올린다. 적어도 요 며칠 특히 오늘 하루는 나도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오랜 시간 떠올린다. 멕시코 명절대로라면 장인어른에게 두 번째 죽음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려면 아직 멀었다. 다시 한번 오롯한 마음을 담아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덧말) 우리나라 설이나 추석에 차례 지내는 게 있었네요. 저희 집이 차례상도 차리지 않아서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연체동물 집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