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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y 06. 2016

소주

연휴 전날. 야근을 마치고 회사 상사와 선배들과 소주를 한잔 마셨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면 뱃속부터 피부 표면까지 찌릿함이 느껴진다. 삼겹살 몇 덩이를 불판에 올린다.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는 동안 술잔이 몇 번 더 부딪친다. 고기가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 안주는 회사의 이야기들. 주린 배에 고기 몇 점을 밀어 넣는다. 상추와 쌈장 찍은 마늘도 함께 입으로 들어간다. 술과 고기가 알딸한 정신과 뒤섞인다. 상사의 칭찬에 기분이 좋지만, 마음은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딸에게 가있다. 머리를 휘젓고 다시 한잔 들이켠다. 이게 직장생활일까? 이게 맞는 걸까? 내 앞에 웃고 있는 저 사람들은 20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해온 걸까? 


나도 시간이 가면 저렇게 되는 걸까? 갑자기 서글퍼진다.


술이 싫다. 직장생활을 하며 얼마나 더 술을 마셔야 할까? 벌겋게 상기된 상사의 웃는 얼굴 위로 지금까지 마셨던 술상자들이 쌓여간다. 다시 한잔 들이켠다.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싶다. 한잔 또 한잔. 정신이 아련해진다.




이미 자정이 넘었다. 늦게 귀가하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맞벌이하는 아내가 퇴근 후 지친 몸으로 혼자 육아와 가사를 감당하기 어렵다. 서로 도와야만 근근이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일찍 귀가하면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일을 끝내고 말고 문제는 둘째다. 빨리 퇴근하는 것만으로 이미 괜찮은 직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느 한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중간에 걸쳐져 있다. 비록 몸뚱이는 직장과 집 사이에 머무르지만, 마음은 자유롭게 날아간다.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래 만나지 못한 벗들에게 간다.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외국의 어느 뒷골목을 헤매고 간다. 이게 다 소주를 마신 덕분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아내의 잔소리와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은 감수해야지. 연휴가 시작되었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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