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옷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응?"
"입지 않는 옷들 말이야.."
"아~그래그래"
명절 연휴에 시간을 내서 미뤄뒀던 헌옷을 정리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몇년째 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고 싶지 않던 마음도 분명 있었다. 더 이상 옷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2년 이상 입지 않았던 옷을 정리해야만 했다.
옷을 고르다보니 하나씩 옷에 담겨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첫 직장 입사할 때 부모님이 사주신 네이비 정장.
아내가 우리집에 처음 인사올 때 입었던 카키색 원피스
아내와 연애할 때 즐겨입던 빨간 니트
배낭여행할 때 현지에서 사서 입던 회색 반바지
딸과 산책할 때 자주 입던 파란색 티셔츠
몇년간 휴가 때마다 입었던 편한 청바지
아내가 딸을 임신했을때 자주 입던 핑크색 임부복
어느것 하나 사연 없는 옷이 없다. 이제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낡아서 더 입지는 않지만, 버리려고 하니 옷에 깃든 추억까지 날아가는 것 같아서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새옷을 사고 행복하던 모습, 옷을 함께 골라주며 흐뭇해하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옷을 버린다고 그 마음까지 버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나는 계속해서 망설여졌다. 그렇게 수년째 옷을 버리지 못하고 옷방 한가득 쌓여진 것이다.
"각자가 꼭 남겨둬야 할 것 한, 두개만 빼고 정리하자"
"응. 아니아니 그건 안돼"
한동안 옷을 들었다놨다 하다가 결국 내가 한번에 들 수 있을만큼 들어서 4차례 헌옷 수거함에 갖다넣었다. 하나씩 옷이 손을 떠나가는 짧은 순간 옷과 함께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커다란 헌옷수거함이 가득찼다.
남들에겐 그저 헌 옷이지만, 주인에게는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그래서 낡고 입을 수 없는 옷도 간직하고 싶은걸까? 마음이 시원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