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인사발령을 받은 지 한 달이 되었다.
환경이 변하고 깨닫게 된 3가지 착각.
3가지 모두 '아니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한 달간 나는 방황했다. 아니 아직 방황하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두려웠고, 불안했다. 간혹 친한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배부른 소리 한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핀잔만 듣기 일쑤였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고, 결혼했고, 안정된 삶을 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든, 선배든, 가족이든 내 입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쓸데없는 걱정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심각했다.
내가 관리하는 조직의 성과가 좋은 편이었고, 직원들과 소통도 잘 되었다. 덕분에 상사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착각을 했다. 내가 회사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일을 잘하는 거라고..
인사발령을 받고 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성과는 좋지 않고, 아직 직원들과도 서먹할 뿐이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소통도 잘 될 리가 없다. 직원 개개인의 가정 대소사나 관리점의 내부 사정에 빠삭한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다. 일도, 사람도, 관리점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다시 해나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다시 잘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와 내가 관리하는 조직이 같이 성장해야 한다.
나에게 가정과 가족은 삶의 전부였다. 성공, 부, 친구 등 모든 것보다 가정과 가족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가정적인 사람이고 가정에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말부부가 되면서 가정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가정에서 그다지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아내와 딸은 나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불만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가족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이나 휴식)을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짜증과 불만이 직간접적으로 표출되었다.
아내와 딸은 내가 항상 화가 나있거나 지쳐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해준다고 했다. 나는 엉터리였다. 몇 번이나 피드백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이 다툼으로 이어졌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더 뭘 어쩌라는 거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는데?'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 하면서 오랜 시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부부가 되면서 새삼스레 그런 내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정에서 잘하려면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해줄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필요한 것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뒤늦게 깨닫고 고쳐보려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해야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해'
'가족들이 좋으면 나도 좋아'
'나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있어'
스스로를 속이고, 세뇌시키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혼 전. 혼자였을 때 그렇게 시간이 많다는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누워서 빈둥거리거나 쓸데없이 시간을 죽이기 일쑤였다. 결혼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다시 혼자가 되니 퇴근 후 육아나 가사를 해야 할 몇 시간이 몇 시간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 뭘 해도 다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한 달여 시간 동안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어렴풋이 무엇을 할지 결심이 섰다. 이제 흔들리지 않고 지속하면 된다.
방황하는 나에게 아내가 해준 말이 있다.
"당신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들도 행복하지 않아. 당신이 좋아하는 것도 해요"
스스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나를 너무 억누르고 그곳에서 요구하는 내가 되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렇게 맞춰서 살았다.
이제 그냥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행복해진 내가 주변에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