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는 수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멋지게 수염을 기른 캐릭터들을 동경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삼국지 관우, 축구 선수 젠나로 가투소, 원피스의 미호크, 배우 조니 뎁, 차승원 등
그들은 수염이 정말 멋있고 잘 어울렸다. 그래서 그들을 보며 언젠가 한 번쯤 수염을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행히 나는 염소 같은 얌생이 수염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거뭇거뭇하게 잘 자라는 장비 같은 스타일이다. 하루만 안 깎아도 콧수염과 턱수염이 까맣게 자란다.
'턱수염은 별로고, 콧수염만 멋들어지게 길러봐야지'
사실 수염을 기르는 방법을 모른다. 손질해야 하고 관리해야 하는 줄도 몰랐다. 그저 그 부분만 안 깎고 내버려두면 되는 줄 알았다. 3일이 지났다. 거울을 보니 콧수염이 제법 삐죽삐죽 자랐다.
'좋아! 한 달쯤 길러보자'
어제 하루 만에 수염에 대한 다짐을 접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면도를 했다. 남자들은 내가 수염을 기르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여자들이었다. 하루 종일 여자들과 접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건 집, 사무실, 현장 어디든 마찬가지다.(아내, 딸, 장모님, 회사 직원들) 하루 만에 3건의 피드백을 받았다.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왜 면도를 안 했어요? 지저분해 보여요"
"수염을 한번 길러보려고요."
"그냥 평소처럼 깔끔하게 다니세요"
"안 어울리나요?"
"네"
그야말로 팩트 폭격이었다. 여러 명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집에 와서 깨끗하게 밀어버렸다. 항상 짧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나와 수염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한 가지를 고려하지 못했다.
위에 언급했던 수염이 멋진 사람들은 수염이 없어도 멋지다는 것이다. 그냥 무조건 멋있는 사람들이지. 수염이 있어서 꼭 멋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멋있는 연예인들도 수염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평범한 아재인 나는 오죽할까?
예전에 친동생이 수염을 멋지게 기른 적이 있다. 수염이 잘 자라는 약도 바르고, 연필 같은 걸로 칠하고, 가위로 길이도 손질하고 제법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나 미염공이 될 수는 없는가 보다. 대신에 수염 생기는 어플 사진으로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 여자들은 왠만하면 수염을 싫어합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백발이 되면 백발 올백과 흰수염을 길러보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