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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Aug 07. 2018

고3 시절의 추억

그때의 선택이 많은 것을 바꾸었다.

오랜만에 고교시절 친구 B를 만났다

B는 학창 시절 스피치 능력이 뛰어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B는 현재 A사에서 성공해서 다이아몬드가 되었다(사람들은 이 친구를 리더님이라고 불렀다) 최근에 강의 영상을 보니 예전보다 스피치 능력이 더 향상되었다. 수백, 수천 명 앞에서 자주 서서 강의를 하다 보니 늘었나 보다. B와 친구들 이야기,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밌는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우린 꼴통반이었다

고교시절 우리 반은 좀 특이했다. 반 친구들의 30%는 3년간 같은 반, 70%는 2년간 같은 반을 했다. 문과반 중에 제2외국어를 불어를 택한 인원이 적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을 오래 하면 친해진다. 우리 반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소위 꼴통반이었다. 성적은 학급 중에 가장 낮고, 시끄럽고 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고3 반장 선거날이었다

나는 당일 아침까지 생각지 않던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반장 후보는 단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나였고, 다른 한 명은 인기 좋고 말을 잘하는 B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후보 연설에서 B는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엄청난 호응과 웃음을 유도했다. 이미 승산이 없어 보였다.


'아씨. 쪽팔리게 괜히 나와가지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마음에서 나오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우리 이제 고3이잖아. 나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 내가 한 가지만 약속할게. 우리 꼴통반 공부 열심히 잘할 수 있도록 좋은 면학 분위기 만들게. 우리 같이 좋은 대학가자!"


고3 때 반장에 당선되었다

투표용지를 펼치면서 칠판에 바를 정자를 적어나갔다. 이게 웬걸 의외로 박빙이었다. 압도적으로 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비슷하게 표를 얻었고 막판으로 갈수록 내 이름이 더 많이 나왔다. 60%의 득표율로 나는 반장에 당선되었다.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일이었다.


잘 노는 친구들은 대부분 B를 뽑았을 것이고, 조용하고 힘없는 친구들이 나를 뽑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속앓이 하던 힘없는 친구들이 나에게 희망을 걸었으리라 추측한다. 나는 그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반장이 된 다음날 기선제압을 위해 시끌벅적한 야자시간에 교탁을 번쩍 들어서 교실 한복판에 집어던지고 소리쳤다.


"야~ 다 조용히 해!"


나중에 부서진 교탁을 본 담임 선생님은 나를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힘을 실어주었다.


"내가 없을 때 반장이 조용히 시킬 권한이 있으니 잘 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를 불러서 나직이 말씀하셨다.


"우리 반 대학 진학은 너한테 달렸다"


반장이라는 역할이 무겁고 힘들었다.

나는 역할에 충실했다. 친구들과 한 약속, 담임 선생님이 주신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떠드는 친구들과 참 많이 싸웠다. 욕도 많이 하고, 화도 많이 냈다. 그리고 후회도 많이 했다.


'고3 때 하필 반장을 해가지고..'


나는 누가 떠들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다. 별로 오지랖을 좋아하지 않는데, 맡은 역할 때문에 친구들이 떠들 때 주의를 주거나 제지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아마 공부하지 않고 노는 친구들은 나를 눈에 가시로 여겼을 것이다.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고 싶다는 나의 바람도 어긋났다.


가장 억울했던 것은 그렇게 남에게 신경 쓰고 힘을 빼고 나면 막상 몇 시간 앉아있어도 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3 시절 나는 수능에 실패했다.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역할에 따른 스트레스와 집중을 못한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잃은 게 있다면 얻은 것도 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리더로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을 많이 시키셨다. 사람들 앞에서 3분 스피치 연습을 시키고, 매주 학급회의를 주관시켰다. 리더십에 대한 피드백도 수시로 주셨다. 그리고 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보내셨다. 이 경험들이 훗날 학군단, 장교, 회사 관리자 생활을 할 때마다 도움을 주었다.

그때는 공부하기 바쁜데 이런걸 왜 시키나했다.


올해 스승의 날에도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잘하고 있지? 넌 잘할 거야. 뭘 해도 잘하니깐"

 

하고 격려 해주셨다.


요즘도 가끔 생각을 한다. 그때 내가 왜 반장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많은 것을 바꾼 것 같다.



※ 감사합니다. 여전히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손형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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