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덜컥 선생님께 전화드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옛 제자의 요청을 흔쾌히 승낙하셨다. 약속을 잡았지만 가슴이 쿵쾅거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끔 전화만 드리고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약속장소에서 만난 선생님은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큰절을 올렸다.
당시의 회상
고3 때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인생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애정을 가지셨다. 단순히 예뻐한 게 아니라 가혹한 트레이닝을 시키셨다. 책임감, 리더십, 자율성 같은 항목을 강조하고 실제로 수행시키셨다. 그런 게 되어 있지 않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으니 할 말 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인 나에게 반장이라는 이유로 장교 후보생 때보다 더 빡빡하게 교육시키셨으니 당시에는 힘겨웠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 이야기를 하셨다. 정확히는 '대통령과 청소부'라는 예시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대통령이라는 귀하고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욕먹는 것보다 맡은 바 충실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청소부가 되는 게 낫다는 말씀이었다. 무슨 일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머리가 먹먹해졌다.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있는 일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
현업에 소홀하면서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경험한 바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가더라. 지금 하는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다른 일을 맡아도 그 일도 잘 해낼 수 있다. 결국은 일을 하는 마음가짐의 차이다. 현재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을 하면 180도 달라져서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아랫사람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윗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하고 따른다. 하지만 아랫사람(직급, 나이가 아래)은 신경 안 쓰는 사람이 많다. 직장생활을 해보면 90%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갑질이나 부조리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부하직원 눈치 보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언제나 떳떳하고 솔선수범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경계를 하면서 잘 이행해야겠다.
고등학교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던 것을 17년간 사회를 겪은 후 다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나는 그저 "네네, 맞아요"를 반복하면서 격하게 공감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붕 떠있던 차에 선생님을 만나 뵙고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나의 일상에 대해서 물어보시던 선생님은 지금 아주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요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희미해지던 차에 선생님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다시 이상적인 일상 정리하고 지속하기
1. 직장에서 현재 하는 일에 충실하고(업무성과와 관계 동시에 챙기기)
2. 가정에서도 가족들에게 충실하고(주말부부지만, 자주 통화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기)
3.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부모님, 친구, 동료들 통화하고 만나서 좋은 영향 주기)
4. 종교생활과 봉사활동(주일에 딸과 성당 나가기, 간식 만들기 봉사활동)
5. 운동과 식단 조절(매일 아침 가벼운 운동, 야채/과일 섭취, 식사량 조절)
6.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독서, 글쓰기, 필요한 공부)
선생님, 저는 고3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너는 내가 전달하는 것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보내지 않았다. 보통 그 나이 아이들은 아프거나 힘든 것을 전달하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튕겨내거든. 너는 그것을 스스로 떠안고 완충시켜서 아이들에게 전할 줄 알았다. 물론 아이들의 이야기도 나에게 그렇게 전했지"
"제가 그랬나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그 나이에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 너는 그때부터 리더 자질이 있었다."
용기를 주려고 해 주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마 선생님이 공들여서 트레이닝시켜주신 덕분이겠지.
"지금도 분명 관리자 역할을 잘하고 있을 거야. 그때부터 계속 직간접적으로 너는 리더 생활을 해왔고, 배우고 경험을 쌓아왔으니깐.."
어쩌면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매번 내가 고비를 겪을 때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어려움들을 극복할 때마다 배우고 익혀서 내재되어 있던 그때의 기억과 경험들이 발휘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이 줄어든다. 다행히 아직 곁에 부모님, 은사님, 직장선배님 등 좋은 분들이 계시지만 어릴 때만큼 나에게 조언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분이 많지 않다.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이고, 이제 더 이상 좋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로 하는 후배나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위치가 되어가는데, 나는 아직 조언을 하기에는 갖추어진 것이 없어서 민망하다. 내가 어릴 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던 분은 내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고 갖추었다. 늦더라도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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