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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Sep 21. 2016

턱걸이 인생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룬다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은 쉽게 이루는 것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운까지 따라주어야 턱걸이로 간신히 이루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많았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정말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학창 시절 어울리던 친구들이 마음잡고 공부하면 등수가 10등~20등씩 오르는데, 나는 죽어라 공부해야 겨우 1~2등이 올랐다. 부모님은 그것도 대단한 거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렇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엄마, 아빠는 믿는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무엇인가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앞두고 실업계로 진학하라는 상담에 좌절했다. 그렇지만 이를 무시한 채 간신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턱걸이로 들어갔다.




고등학교에서도 턱걸이 인생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적은 중하위권. 공부에 대한 목적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서 매일 친구들과 하는 농구만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고3이 되던 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계기가 생겼다. 탄탄한 몸매와 멋진 제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의 모교 방문이었다. 그 이후 내 목표는 사관학교가 되었다. 막연한 군인이 되겠다는 어린 시절 꿈이 떠올랐다. 당시 사관학교의 경쟁률은 매우 높았다. 연고대에 필적할만한 성적에 체력도 좋아야 했다.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공부 잘하는 친구의 옆자리로 옮겼다. 그 친구와 종일 붙어지내면서 함께 공부했다. 갑자기 공부를 시작하는 나와 공부에 대한 내공이 쌓인 그 친구는 차이가 많이 났다. 그 친구는 문제집 한 권을 하루 만에 풀어냈지만, 나는 3일이 넘게 걸렸다. 그 친구는 여자 친구도 사귀고 게임도 틈틈이 하면서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사관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패배자가 되었다.


그 해 친한 친구 두 명이 사관학교를 합격하고도 포기한 채 각각 의대와 교대에 진학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죽을 각오로 재수를 결심한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재수를 결심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서울대 진학) 집에 가서 문제집을 얻어오던 날. 친구 집 앞에서 기다리니 친구가 노끈으로 묶어둔 문제집을 100권쯤 가지고 나왔다. 노는 듯 보이면서 이 많은 것을 다 풀어냈던 것이다. 그걸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재수학원에서 1년간 공부에 집중했다. 특히 여자들과는 대화조차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성적은 전년도와 비슷했다. 수리, 과탐영역에 점수가 집중된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표로 던 사관학교는 또 물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한 살 아래 사촌동생이 무난하게 사관학교에 진학해버렸다.


대학교에서 ROTC를 하면 장교가 될 수 있다

3수와 대학 진학을 포기할지 고민하던 나에게 던져진 아버지의 사탕. 사관학교 대신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역시 턱걸이였다. 문과 출신이 상상도 못 하던 공대에 진학했다. 그때 대학이나 과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가면 행복할까?

시트콤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기숙사, 여자 친구들, 자유로운 생활을 꿈꿨다. 불행하게도 나를 기다리는 것은 거무튀튀한 남자 선배들과 매일 밤낮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고등학교 때 배우지 못했던 수학, 물리, 화학 같은 공대 기초과목들이었다. 1학년 수업은 고등학교 때 이과 과목들의 반복이었다. 교수님들은 당연히 알 것이라는 듯이 지나쳤고, 친구들은 공부하지 않고 기본 실력으로 A나 A+학점을 받았다.


나는 처음 F를 받았다. 대학 첫여름방학 때  수 2, 물리 2 같은 고등학교 교재를 사서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다음 학기에 겨우 B나 C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2학년 전공수업으로 넘어갈 때도 나는 늘 도서관에 살다시피 해서 겨우 B학점 언저리를 받아갈 수 있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한 선배들은 전과목 A+같은 신화를 이루며 서울대,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졸업하고 임관해서 군대로 향했다.   



취업도 턱걸이인가?

취업할 때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내노라는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갔다. 분명히 같이 공부하고 준비하던 친구들은 잘만 취업을 하는데, 나는 계속 떨어졌다. 전역 전에 취업은 실패하고 기나긴 취준생 기간을 겪어야 했다.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도 턱걸이 인생은 계속되었다. 우수한 평가를 받거나 성과를 이룰 때 나는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허덕였다. 동기들이 1등, 2등을 차고 나가는 동안 나는 그 흔한 칭찬 한번 듣기가 어려웠다.


남들 꽁무니를 쫓아서 멈추지 않고 힘겹게 달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꼴찌는 아니다. 앞서 뛰어가던 친구들 중 달리기를 포기하거나, 방심하다 넘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비로소 내가 최악의 인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회사에 제출할 토익 성적이 겨우 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축하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될 줄 알았어. 네가 턱걸이 인생이라 힘들어서 그렇지 해내긴 하더라고.

턱걸이는 올라가지 못해도 꼭 붙잡고 있으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카운팅 하는데 실패해도 다시 올라가면 된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턱걸이가 될 것 같다. 쉽게 이룰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포기하지 않고 힘내서 올라가며 된다. 천상 열심히 살아야 할 운명이다.

  

※ 혹시 저에게 주변사람들이 성공하게 하는 기운이 있을까요?ㅋㅋ 오세요 저에게 성공시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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