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작은 서점에 들렀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무조건 베스트셀러나 유명 작가의 책을 찾았다면, 요즘은 책꽂이 안쪽에 꽂혀있는 이름 모를 작가의 책을 뽑아 든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내가 사지 않아도 누군가가 살 것이고, 도서관에 가도 널려있겠지만, 희소성 있는 귀한 책들을 고르는 것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처럼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집에 있는 책꽂이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책들이 주를 이룬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베스트셀러를 다독하는 것이 미덕인 줄만 알던 시절이다.
몇 년 전 책을 내려는 지인에게 아주 무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형, 내가 13,000원 하는 책 한 권 사는 게 도움이 돼? 아니면 13,000원 돈으로 주는 게 도움이 돼?
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제적으로는 돈으로 주는 게 좋은데, 네가 내 책을 한 권 사줬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다. 나였으면 이단 옆차기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지인의 책 표지의 서평까지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내가 서평을 써도 별로 영향은 없겠지만, 회사와 직책의 힘을 빌어서 책의 판매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민망하지만 대놓고 썼다. 그만큼 지인의 특정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은 그 책은 대필작가가 써줬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히 동경하던 지인이었는데 실망했다. 물론 콘텐츠는 지인이 제공했지만, 책을 쓴 것은 이름 모를 대필 작가라는 게 참 씁쓸하다. 요즘 돈을 받고 글을 써주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다. 책도 아웃소싱이라는 말을 들어오던 터라 놀랍지는 않지만, 왠지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대필작가에게 맡기는 이유는 책을 내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유명세를 활용해서 책을 내는 사람들은 책 쓰는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인세 수입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고, 단시간에 많은 책을 써서 돈을 벌려고 할 테니깐 입장이 이해는 된다. 예상대로 지인은 책을 낸 후 강의를 다니며 강의료를 챙기는데 주력했다. 책값을 도둑질당한 기분이다. 서평을 써준 탓에 나도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대필작가의 책을 사서 읽은 것일까?
반면 글 쓰는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는 책은 잘 썼건 못 썼건 일단 좋다. 거기에는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의 답답함, 초조함, 눈물, 짜증도 담겨있다. 글이 잘 나올 때의 만족감, 자신감, 기쁨, 안도가 담겨 있다. 글을 쓰면서 그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이런 상상을 한다.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님들이 모두 책을 출간하고 한자리에 모여서, 지금처럼 글을 쓰던 시절과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던 날을 떠올리며 함께 웃을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