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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Jun 29. 2016

서울대에서 경험한 것들


나는 서울대에 입학한 적도 없고, 졸업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생활을 8개월 남짓할 수 있었다.


09년 무더운 여름날 나는 전투복을 벗고, 무거웠던 계급장을 내려놓았다. 부끄럽게도 전역 전 취업에 실패했다. 취업에 대한 준비 부족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할지, 어학연수를 갈지, 취업준비를 할지 고민하다 셋다 놓쳐버렸다.


전역 전 지인의 추천으로 KIST에 도전했으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저렴한 학점과 어학성적, 준비 없는 도전은 실패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 도움을 주신 대학 선배 두 분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가려다보니 목적이 영어점수 취득이라 돈이 아까웠다.(사실은 돈이 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은 취업 준비였다. 영어공부는 그냥 국내에서 하기로 했다. 전역 후 고향으로 가는 친구, 대학교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신림동 고시촌을 전초기지로 택했다. 이유는 한 가지. 우연히 서점에서 사서 읽게 된 책 덕분이었다. 서울대생이 아니라도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한다는 그곳에 가면 왠지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합격을 피하는 법'

이 책은 서울대 박사 출신 변호사가 자신이 고시 준비를 하면서 생활과 학습에 관한 것을 아주 상세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학교에 들어가는 방법, 공부하는 열람실, 밥 먹는 곳, 휴식하는 곳 등 너무 상세해서 게임 공략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인생을 책 한 권에 걸어보기로 했다.(공략집은 거짓말 안 한다)


전역 당일 미리 봐 두었던 신림동 고시원으로 직행했다. 보증금 없는 26만 원짜리 반지하방. 백수 주제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고시촌은 신림2동과 신림9동이 있었는데, 나는 신림2동을 택했다. 이유는 그냥 책에서 2동이 좋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무슨 기가 어쩌고 저쩌고..)




연고도 없고, 지인도 없는 낯선 이 곳에 홀로 호기롭게 들어섰다.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원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믿을 것이라고는 책 한 권이 전부였다. 모아놓은 돈을 다 쓰기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책에 나온 대로 셔틀버스를 타고 중앙도서관 5 열람실(일반인 출입가능) 둘째 줄 벽을 향한 자리에 않았다. 책에 쓰여진 식사 시간과 식사 장소도 그대로 했다.(아침은 학관식당, 점심은 음대 교직원 식당) 먹을 음식, 가릴 음식, 수면 패턴까지 철저하게 따라 했다. 그렇게 3주 정도 생활을 했다. 학원에 잠깐 다녔을 때를 제외하고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은 날도 많았다. 혼자서 밥 먹고, 공부했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 공부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서울대 학생들은 대단했다. 도서관이 항상 북적였다. 시험기간에만 북적이던 우리 학교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대부분이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울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사실이지만, 대학 4년 동안 공부량이 엄청나다. 대학 순위 매기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도서관에 가보면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명문대일수록 도서관에서 열기가 뜨겁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우리 학교 학생들의 목표는 대부분 삼성, LG 같은 대기업 취업이었다. 간혹 외국계나 공기업 취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하지만 서울대는 고시 패스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고시 합격하는 사람도 가장 많다.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수재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니 고시든 뭐든 공부로는 다른 학교게임이 될 리가 없다. 그동안 '열심히'라는 단어를 사용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공부와 외로움에 혼자 말라죽을뻔한 나를 구원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우연히 서울대 법대에서 주일마다 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신부님이 그곳에 매주 오셔서 고시공부에 지친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열어주고 계셨다. 서울대생도, 고시생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일주일에 한차례 미사와 주일미사 사람들과의 식사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주미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내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이 사람들이 머리가 좋기만 한게 아니라 참 반듯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일 것이라는 내 편견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뜻하고 착실했다.(그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고시를 패스하거나 좋은 곳에 취업하거나 박사가 되어 승승장구 중이다)


이들 덕분에 나의 생활 반경은 넓어져갔다. 서울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재학생들만 등록 가능하던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었고, 책을 빌려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재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열람실을 가보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6개월쯤 지나서는 방문객에게 길을 알려 주는 정도로 교내 정보가 빠삭해졌다. 아쉽게도 원하던 영어성적 취득과 취업을 하면서 서울대를 떠나게 되었다. 가끔 미사를 드리고, 사람들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그마저 신림동을 떠나면서 뜸해졌다. 페이스북으로 가끔씩 소식을 보고 있지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신세 갚을 날이 꼭 올 것이다^^




무모한 경험이 새삼 값지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에 입학도 안 하고 이렇게 오래 드나들면서 함께 생활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1. 공부하는 자세를 배웠다

2. 서울대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3. 환경의 중요성을 느꼈다.

4.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5. 춥고 배고팠던 시기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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