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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r 25. 2016

회사에 연차를 쓴 날

내가 모르던 세상들

3개월 후면 전세계약이 끝난다.

이사할 집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어제 연차를 냈다. 덕분에 전날 밤 12시까지 야근을 했지만, 마음은 가볍다.


아내는 시외 교육이 있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쉬는 날이니깐 한가할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대충 씻고 딸아이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혀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한 문장에 끝나는 일인데, 장난치고, 떼쓰는 딸을 달래서 데려다주는 게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늘 함께 오던 할머니가 아닌 낯선 아저씨 손을 잡고 나타난 딸아이를 보고 놀라는 눈치다.


황금 같은 오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송곳이라는 웹툰에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다. 출근할 때는 무심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멈춰버린 시계, 손잡이가 빠진 서랍장, 비어버린 냉장고..

오랜만에 집안 정비를 하고 나니 2시간이 흘러있다.




가끔은 위치를 바꿔서 다른 시선으로 익숙한 풍경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낯설어 보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다녀오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을 몸으로 빨아들였다. 나에게는 특별한 하루지만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나말고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지하철 환승역 한복판에 잠깐 멈춰서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바쁜데 나만 여유가 있다는 게 즐거웠다.


제대로 자유를 누려보려고 스마트폰과 자동차 키를 서랍 속에 던져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연차만 내면 회사에서 전화가 빗발친다. 평소에 연락 안 하던 사람까지 연락이 온다. 사람들에게 육감이라는 것이 있긴 있나 보다. 결국은 뒤늦게 전화를 걸어서 수습을 해야 했다. 외국에는 연차 냈을때 연락하지 않는다는데, 아직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그렇지 않다. 전화 안 받았다고 난리를 친다.   




부동산 몇 군데를 다니며 집을 알아보고, 장을 보고 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사실 연차를 썼는데 출근했을 때 보다 더 피곤하다.


익숙한 일(회사) + 익숙하지 않은 일(가정, 개인) = 두배의 피로감




그래도 연차라는 것은 참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내 연차는 좀 내 마음대로 쓰고 삽시다. 다 쓰지 못한 연차 보상금도 안 주면서.. 그래도 점점 기업문화가 좋아지고 있으니깐(아빠가 많이 노력할게^^) '딸아이가 직장에 다닐 때는 지금보다 많이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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