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밍아빠 Jan 06. 2017

전문분야 : 여자

여자들을 대하면서 배운 것

20대 이전까지 나의 삶은 투박하고 마초적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을 둘러보아도 또래의 여자는 극히 드물었다. 군인, 운동선수, 술 좋아하고 억센 사내들 틈에서 성장했다. 본래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성격도 주변의 "남자는 말이야~" "사내 새끼가~" 하는 세뇌교육 탓에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어갔다. 장래희망은 군인. 취미 및 특기 스포츠와 격투기. 점점 남성성이 짙은 사내가 되어갔다.


10대까지 또래 여자와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불편해서 스스로 피했다.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을 대한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욕설과 운동으로 쉽게 친해지는 또래 남자들만 사귀었다. 그때까지 여자는 나에게 생소하고, 약하고, 시끄러운 존재였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여자들과 어울렸다.

동아리나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여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속에 있던 편견이 서서히 걷혔다. 사랑이라는 마음 외에도 편안하고 잘 통하는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고, 남자들에게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위로와 공감을 얻으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공대-학군단-군대라는 남성적인 환경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젊은 여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첫 직장이 남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면, 두 번째 직장은 80%가 20~30대 젊은 여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팀이나 동기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청일점'이 되었다. 일이나 관계에서도 여자들과 풀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여자들의 생각, 여자들의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싸우고 술 한잔 먹고 푸는 일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조용하고,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본래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강한 척 앞에 나서고 큰 목소리와 우락부락한 근육을 내세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자체로 마음이 편안했다. 남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배웠다면, 여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커피를 배웠고, 맛집이나 쇼핑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 동료와 선배들 사이에서 편안하다는 인식(대화 잘 통하고 호감은 있되, 대시하는 느낌 전혀 없음)을 주었고, 여자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 관심사를 질문하고 들어주고 리액션 넣고 이런 패턴이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여자 여러 명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그러다가 연애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아줌마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세 번째 직장은 30대~50대까지의 여자들이 주를 이루는 직장이다. 그곳에 관리직으로 들어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들을 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생각의 차이가 컸고 대화나 지시가 어색했다. 세대차가 나다 보니 공감대 형성도 어려웠다. 이 문제는 내가 결혼을 하면서 상당수 해결되었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생긴 덕분이다. 젊은 여자보다 오히려 대하기 자연스럽고 쉬웠다.


1. 가족(자녀문제, 남편 문제, 시댁문제)

자녀 이름을 불러주며 잘 지내는지? 학업에 관한 것, 관심사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화가 부드러워진다. 남편의 직장, 소소한 집안일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고 들어주다 보면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 시댁에 대한 문제는 거의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지만 공감해주면 된다.


2. 드라마(인기 드라마, 멋진 남자 배우)

"그 드라마 봐요? 도깨비? 잘생긴.. 누구 나오더라?" 여기까지만 시작하면 포문이 열린다. 배우에 대한 극찬과 여러 가지 가십거리들이 나온다. 추임새만 넣으면 된다. 행복한 표정과 대단히 열정을 가지고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현대 여자에 대한 나의 생각

40대~50대 여자들의 남편은 대부분 30대인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다. 남편에게 지쳐있던 아줌마들은 젊은 남자들의 생각에 흥미를 가진다. 예를 들면 "집안일은 같이 나누어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대우받는 것이 요즘 트렌드예요." 등의 말을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금은 당연한 그런 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아줌마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원들이 힘들어할 때 해주는 말

우리가 회사에 나오는 목적이 뭐예요? 돈 벌러 나오는 겁니다. 왜 돈을 벌지요? 나 잘 먹고 잘 쓰자고? 아니면 집에서 놀면 심심하니까? 아닙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더 맛있는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학원 하나 더 보내고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딸 가진 아빠인 저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힘들어도 어려워도 일합니다.

가족들에게 일이 있으면 조퇴하고, 연차 쓰고 달려가세요. 가족이 우선입니다. 대신 일할 때는 가족들 생각하면서 힘내서 기왕 하는 거 잘하도록 해요. 인센티브도 받고, 시상도 받고 스스로도 뿌듯하고 가족들 앞에서도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우리 같이 힘냅시다.



※ 저를 비롯해서 우리 직원들이 가족들 앞에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보다 어린 여자에 대해서도 잘 배우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소개팅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