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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y 07. 2017

휴일의 와인

와인이야기

여보, 우리 와인 한잔 마실래?


동화책을 몇 권 읽어주고 겨우 딸을 재우고 나온 나에게 아내가 술을 권한다. 맥주 반잔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아내가 웬일이지? 우리 부부는 둘 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이서 술 마실 일은 거의 없다.


아내의 유혹에 선물 받은 와인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 와인 잔은 겨우 2개 마련해놨는데, 와인 따개가 없다. 스마트폰으로 와인 따는 방법을 찾아서 해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결국 잠옷바람에 얇은 점퍼 하나를 걸치고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와인 따개 있나요?"

"네, 그런데 한 종류밖에 없어요."

"그거라도 주세요."


중국에서 만든 어설픈 3천 원짜리 와인따개. 이걸로 내가 딸 수 있을까? 마치 와인을 따다가 부러질 것처럼 가냘픈 싸구려 와인따개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바닥에 앉아서 설명서를 보면서 와인병과 따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아내는 불안한 눈빛이 느껴진다.


"오늘 마실 수 있는 거지?"

"그럼, 이거 설명서대로만 하면 돼"


코르크에 나선형 쇠 부분을 돌려 넣는다. 아! 한쪽으로 쏠렸다. 빼서 다시 돌려 넣는다. 예전에 코르크 마개를 몇 번 쑤시다가 으깨져서 마개를 안으로 밀어 넣어서 와인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와인잔에 코르크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던 것을 친구들과 뱉어가며 마시던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이번엔 한가운데 잘 들어갔다. 와인병에 한쪽에 걸이 부분을 걸고 힘을 주니 스르륵 코르크 마개가 올라온다.


"봐봐, 이게 어려운 거 아니거든"


급 우쭐 해진 나는 나머지 따개를 밀어 올렸다. 뭔가 후련한 느낌이다. 날씬한 코르크 마개를 빼어내고 두 잔 와인잔에 와인을 쪼르르 따른다.


"칭~"

와인잔 부딪치는 소리가 좋다. 맥주잔처럼 흥이 넘치거나 소주잔처럼 정이 느껴지진 않지만, 가볍고 맑은 소리가 좋다. 잔속에 와인이 넘실거리는 것도 좋다. 습관적으로 잔속에서 와인을 뱅뱅 돌린다. 어디선가 와인에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가끔 이렇게 대화를 하면 내가 친구 같아서 좋다고 한다. 휴일 밤 아내와 거실에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것이 참 좋다. 자녀가 어린 부모들은 이런 시간이 얼마나 간절한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어느덧 아내는 내 무릎에 살포시 머리를 뉘이더니 잠이 들었다. 혼자 TV를 보면서 와인을 몇 잔 더 마신다. 기분 좋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지만, 향이 좋고, 깔끔하고 목 넘김이 좋았다. 생각보다 잘 취하는데 다음날 속이나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아내를 깨워서 방으로 들여보내 놓고 몇 잔 더 마셨다. 시간이 어느덧 새벽 2시를 넘긴다. 내일도 휴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와인병을 보니 1/3도 채 마시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주량이란..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몰래 병째로 한 모금 마셔보았다. 역시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제의 유쾌한 기분이 입안에 돌아서 웃음이 나왔다. 집에 선물 받은 와인이 더 있던데, 종종 아내랑 한잔씩 마셔야겠다.




※ 요즘 마트나 편의점에서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게 꽤 많네요. 안주는 치즈나 샐러드처럼 가벼운 것부터 스테이크나 고기같은 식사와도 잘 어울리네요. 소주나 맥주보다 와인 한잔 가볍게 하고 끝내는 회식을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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