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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Apr 26. 2016

지방 사람의 서울살이

서울에 대한 환상에서 민낯까지

1. 서울에 대한 환상

나는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곳은 먼 곳에 위치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따금 엄친아와 엄친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만 접하던 곳. 그곳에는 똑똑하고, 돈 많고, 멋진 사람들만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멋있었고, 서울 말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학창 시절에 단 두 번 서울에 다녀왔다. 가족여행과 수학여행. 그곳은 나에게 아련한 곳이었다. 당시에는 KTX나 저가항공이 없었다. 그래서 그곳은 나에게 함부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2. 첫 대면과 적응기

수능을 치고 원하는 곳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서울 근교에서 재수를 했다. 왜 그곳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독이 올라있었다. 재수학원에서 처음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을 만났다. 학원에서 집까지 30분 거리에 사는 친구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고속버스로 4시간 넘게 가야 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 서울을 느꼈다. 어색했던 지하철과 교통카드. 바쁘고 낯선 사람들과 조우. 20년 만에 집을 떠난 외톨이지만 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유명한 강남, 강북, 분당, 일산에서 친구들도 있었다. 기대와 달리 그 친구들도 나랑 같은 재수생들이었다. 서울에도 못 사는 사람, 성적이 나쁜 친구, 키가 작고 못생긴 친구가 있었다. 서울 사람에 대한 로망은 깨졌고, 경계심을 풀고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3. 빙산의 일각

재수생활을 마치고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즈음 서울생활도 익숙해졌다. 대학시절 서울은 나에게 환상적인 곳이었다. 놀거리, 먹거리, 구경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 사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잘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다만 서울에서는 길가다 연예인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란 예상만 빗나갔다. 대신에 학교 캠퍼스에서 심심찮게 연예인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이내 무감각해졌다. 철없이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으로 난 아무 걱정 없이 4년간 서울생활을 즐겼다. 강남, 신촌, 홍대, 광화문, 명동, 코엑스, 건대 앞을 전전했다. 군생활 동안에도 친구들을 만나러 종종 서울을 드나들었고, 어느덧 나는 서울이 익숙해져 갔다. 이때까지 서울은 나에게 멋진 곳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자리 잡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 서울의 민낯

첫 직장은 서울 중심부에 본사가 있는 외국계 회사였다. 몇 달간 나는 자랑스럽게 회사를 다녔다. 꽤나 우쭐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노릇이다. 취업을 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나는 반지하 고시원을 나와서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적지 않은 급여를 받았으나 항상 통장은 허전했다. 처음 만든 신용카드 할부금만 매달 늘어났다. 서울에 처음 발을 내딛은지 7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 힘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서울의 물가는 비싸다. 방값도, 밥값도, 차비도 비싸다. 나는 대학교와 부모님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울의 겉모습만 알았던 것이다. 그해 가을 나는 혹독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직장을 옮겨서 집 근처로 내려갔다. 




요즘도 가끔 회사 업무와 교육 때문에 서울을 드나들지만, 서울을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서울생활을 하고 있다면 결혼은 할 수 있었을까? 전셋집은 장만할 수 있었을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동안 맺어둔 인연들을 대부분 수도권에 남겨두고 홀로 떠나왔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서 진학하고 싶은 대학원에 가지 못했다는 것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었다. 주민등록상으로 서울 사람이고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나는 서울에 거주하는 지방 사람이었다. 서울을 떠난 것이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릴 때 서울생활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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