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밍아빠 Jun 21. 2017

'기러기 아빠'는 남일이 아니다

20대에 처음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 유난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살면서 돈 벌어서, 가족 뒷바라지하는 헌신적인 아빠의 모습. 대부분 자녀들을 해외로 조기 유학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저게 뭐하는 꼴이야. 인생 저렇게 살아서 뭐해?


20대의 나는 기러기 아빠를 동정반, 조롱반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국내에 가족들을 두고 해외근무하며 고액 연봉을 받는 아빠,
유학 간 가족을 위해 국내에서 직장 생활하며 생활비 보내는 아빠

특별한 소수라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고, 기러기 아빠를 선배나 동료로 만나면서 느꼈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구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빠들이구나. '기러기 아빠'의 의미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아빠들로 확대되었다. 해외로 보내지 않고, 국내에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가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70% 이상의 선배들이 기러기 아빠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근무지가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한 기러기 아빠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물론 나를 비롯해서 말이다.


40~50대 선배들이 좁은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가족들은 아빠와 남편의 든든함이 필요할 것이고, 아빠는 가족들 온기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자발적인 기러기 아빠들이 몇이나 될까?


기러기 아빠들은 건강을 위협받는다.
외식이 잦고, 도시락, 라면 등으로 끼니를 떼 울 때가 많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없으니 시간이 많고, 야근을 하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비율이 높았다. 게다가 안락한 집이 아닌, 좁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혼자 생활하면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주말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니 피로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버틴다. 아니 버텨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생활이 보장된다. 진급하기 위해서 더 나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 발령이 나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근무지를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직장인은 많지 않다. 회사에서 필요한 곳에 투입되어야 한다. 응하지 않을 경우 퇴사를 하던지, 평가나 진급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 기러기 아빠를 거부하고 버틴 사람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한 자리에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기술직이나 전문직이 아는 한 드문 경우다. 임원 진급이나 다른 혜택을 이유로 본사 근무를 권했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끝까지 거절하셨다고 한다. 출세나 돈보다 가족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20년간 전무후무한 영업실적을 올렸기에 회사에서도 아버지의 선택을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나도 수년 내에 진급을 하면, 선택해야 한다. 다른 지역이나 본사 근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난 특별한 능력도 없고, 이곳에 진급한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


3가지의 선택이 있다.  

1) 기러기 아빠
2) 가족들과 함께 이사
3) 퇴사

 

아내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해보지만, 확실한 해결책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직 몇 년이 남았으니 고민을 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