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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Aug 05. 2017

휴가는 왜 이렇게 짧을까?

잔잔하지만 기억에 남을꺼야

이번 휴가는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남기며 후회 없이 놀아주마


매년 그랬다.

휴가 한 달 전부터 머릿속으로 세계일주라도 할 듯 엄청난 계획을 짰다.


하지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면 어김없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났을까?
왜 그다지 즐겁지 않았을까?
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했을까??


곱씹어보니 그래도 잘한 것도 있다.


휴가 전 세웠던 계획

1. 장모님과 여행
2. 부모님과 여행
3. 딸에게 새로운 경험
4. 아내와 맛집 탐방

5. 아침 운동 습관 유지
6. 읽고 싶은 책 2권 읽기
7. 브런치 글 매일 쓰기
8. 퇴고 작업 시작하기


1~4번 달성, 5~6번은 미달성이다.



그곳에 가게 된 사유


결혼하고 처음 아내의 외갓집(장모님의 친정)에 다녀왔다. 처갓집에서 차로 4시간. 장모님 혼자 다녀오시기는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래서인지 10년 동안 친정에 가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내와 지도를 펼쳐놓고 휴가 계획을 짜다 말고 그곳이 떠올랐다.


"우리 아직 외할머니댁에 가서 인사드린 적 없는데, 장모님 모시고 한번 갔다 올까?"

"나야 좋지. 그리고 엄마와 외할머니가 좋아하실 거야"

"근데, 당신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데?"

"나이 들어도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 딸이 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으니깐.."


결혼하고 아빠가 되고서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우리가 도착하던 날. 그곳에는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시골이라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창밖의 공기가 유난히 시원했다.


외할머님이 전을 부치시다 말고 뛰어나오셨다. 딸아이 돌잔치 이후로 두 번째 만남. 어색하지만 내 손을 부여잡은 외할머님의 손이 참 따스했다.


"아빠~ 나가자. 어서~"


대청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딸아이는 자꾸 보챘다. 시골 가면 온갖 곤충들을 잡아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치 '장팔사모' 휘두르듯 잠자리채를 빙빙 돌리며 의기양양하게 나갔다.


20년 만인가? 잠자리채를 쥐어본 것이..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주 곤충을 잡으러 다녔다. 내 눈에 아버지는 완벽 그 자체였다. 잠자리든, 메뚜기든 눈앞에 나타난 것은 모두 나의 채집통으로 들어왔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때 날쌘 시절이 있었다.


몇 번 휘두르다 보니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머리는 망각했지만, 몸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잠자리를 잡아채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아이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당신 원래 이렇게 날쌘 사람이었어?"

"난 뭐 옛날부터 나무늘보 같았는 줄 알아?"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열대야로 밤새 몇 번을 깨는데 이곳에서는 이불을 꼭 여미고 잠이 들었다. 새벽닭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에 살포시 눈을 떴다. 선선한 새벽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끈적이거나 후덥 한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후련한 느낌이다. 제대로 피서를 왔다.


장모님은 오랜만에 오는 친정에서 친정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푹 쉬다가 와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아내는 추억이 서린 외갓집에 남편과 딸과 함께 와서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딸은 생전 경험하는 시골생활과 곤충 잡고 놀던 기억이 강렬했나 보다. 다음 주에 또 오자고 한다.


나 역시 주변에 식당이나 슈퍼도 없는 조용한 시골에서의 시원한 휴식이 정말 좋았다.  




결혼하고 부모님들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편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긴 연휴의 절반을 양가 부모님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와 아내의 의견이 일치했기에 우린 불편함을 감수했다.


우리의 불편함이 10이라면 부모님들의 만족도는 80 이상이었다. 그래서 휴가를 부모님들과 함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휴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것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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