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밍아빠 Dec 19. 2017

표준어와 사투리

의미만 전달된다면 상관없다

지난 주말 타지방으로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덕분에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서 커피를 마셨다.


다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지만 지방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투리를 잘 쓰지 않아서 잠시 잊었는데, 택시를 타고 기사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다들 억양이 살아있었다. 사투리와 연관된 기억이 떠올라 혼자서 조용히 웃었다.


10년 노력이 1주일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20살에 고향을 떠나서 수도권에서 생활했다. 지방에서 자란 터라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래서 나름대로 억양과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했다. 언제부터인지 대화할 때 표준어 비슷한 억양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고향을 수도권으로 추측할 정도로 순화가 되었다.  


표준어 :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하지만 나의 10년간 노력은 부산으로 이직하면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며칠간 표준어를 사용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으나, 동료들이 쓰는 사투리의 익숙함에 묻혀 내 말투는 금세 구수하게 변해갔다. 특히 연배 높으신 분들과 대화할 때면 말투가 더욱 걸쭉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10년의 노력이 1주일 만에 그리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서울에 계속 살았다면 불편하지만 표준어 비슷한 말투를 흉내 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냥 편하게 살아야겠다.


말투는 닮아간다.

생활하다 보니 함께 지내는 사람과 말투가 닮아갔다. 자신의 말투에 대한 자부심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덜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전라도 출신 룸메이트와 생활할 때는 전라도 억양
충청도 출신 선배와 일할 때는 충청도 억양


물론 그들도 나의 억양을 배워갔고, 장난칠 때는 서로의 사투리를 흉내 내곤 했다. 어쩌면 말투가 닮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과 더 친근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착각

경험에 따르면 충남 이북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표준어를 구사한다고 주장했다. 나의 사투리가 재밌다고 웃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로 정통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수천 명의 지인 중에 손에 꼽힌다. 서울 태생의 현업 아나운서 정도만 표준어를 구사하고 나머지는 각자 지방 사투리다.


서울 사투리, 경기 사투리, 충청 사투리, 강원도 사투리..


단어는 분명 표준어 단어지만 억양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가끔 드라마에서 타 지역 출신 배우가 특정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어색해서 손발이 오글거릴 때가 있다. 오랜시간 사용해온 억양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표준어를 쓴다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


1. 가족, 어릴 적 친구와 통화하게 하기
2. 흥분하게 만들기


두 가지 장난을 통과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어김없이 출신지역 억양이 나오거나 방언을 내뱉었다.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열여덟" 같은 욕설을 내뱉는 것과 마찬가지다.


억양은 중요하지 않다.

억양이 다른 것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기에 중요하지 않다. 못 알아듣는 단어만 아니라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표준어는 TV나 라디오에서 자주 접하므로 익숙할 뿐이다.


말의 억양으로 출신 지역을 구분하고, 지연에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해보면 학연, 지연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점차 그런 분위기가 많이 옅어지는 것 같아서 희망적이다. 현 직장에서도 가장 친한 선배와 잘 챙겨주는 직장상사도 학연, 지연과는 무관하다.


말의 억양은 다르지만 마음이 잘 맞아서 일하고 관계를 맺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아나운서처럼 능숙한 표준어를 쓰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의미 전달이 잘 되기에 그냥 살기로 했습니다.  


※ 커버사진 출처 : tvn응답하라 1994 (http://program.tving.com/tvn/reply1994/3/Board/View)

매거진의 이전글 송년회와 술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