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얼마 전 새로 발령받은 옆 부서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말을 걸었다.
"담배 하냐?"
"전 담배 안 피웁니다"
"술도 안 먹는댔지? 그럼 당구는?"
"당구도 안칩니다"
"노래방은 좋아해? 골프는?"
"노래방 잘 안 가고, 골프는 안칩니다"
"야~ 신기하네. 무슨 재미로 사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노는 거 없어?"
"가족들하고 잘 놀아요. 여행도 좋아하고.."
"막 수다 떨고 그러냐? 계집애냐?"
"..."
비아냥이었다. 대꾸하지 않았다.
"야~ 남자가 그러면 어울리지 못해"
"..."
아직 남자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해서 불편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사교성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또래들 사이에서는 남성적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스포츠와 격한 운동을 즐긴 덕분이다.
불행히 회사 사람들과 그럴 기회는 드물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격한 운동으로 맞부딪칠 확률은 줄어든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다. 글러브 끼고 링에 올라오거나, 농구코트에서 붙으면 박살 낼 자신 있는데..
남자는 술, 담배를 해야 하고, 여자 좋아하고, 잡기에 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남자 자격에서 나는 꽝이다.
90년대까지 그랬는지도 모른다. 영업실적으로 회사에서 전무후무한 내 아버지가 그랬으니깐.. 말술, 담배, 접대, 당구, 골프, 고스톱, 카드 모든 것이 소위 요즘 말로 '만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나는 그 모든 것이 젬볌이고 또 하기 싫다(골프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업문화를 중시하거나 깨어있는 회사는 이런 분위기가 아닐테지..
내가 생각하는 남자의 자격은 좀 다르다. 직장에서 업무에 대한 책임, 가정에서 남편과 아빠 역할, 스스로 실력 쌓는 것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술 한잔 하자거나 유흥업소에 가자는 것을 거절하는 나에게 비아냥 거릴 때 목구멍으로 삼키는 말이 있다.
"남자 XX가 뭐 그래? 그러다 너만 따돌림당해"
"직장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게 아니라 당신 즐기고 놀고 싶어서 가면서 구차한 변명 하지 맙시다."
나는 도무지 그런 곳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뭐라도 배우고 싶고, 실력을 쌓고 갖추어나가고 싶다.
혹시나 직장생활에서는 내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 그래서 회사에서 출세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나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도태되면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날이 올 겁니다."
※ 아내와 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당신은 나 정말 잘 만난 거야"
"왜?"
"날라리 같은 여자 만났으면 당신 얼마나 재미없다고 했겠어?"
"내가 책 읽고, 글만 써서?"
"그래도 난 당신이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거든"
"그게 잘 맞아서 나랑 결혼한 것 아냐?"
"난 당신이 멋있다고 생각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