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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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였지만, 남의 의견을 들을 줄 알고, 말하는 이가 범하고 있는 오류를 꼬집지 않으며, 그것을 여유롭게 쓰다듬어 주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한 아름으로 잡을 수 없는 100년 된 팽나무의 향기가 났다.
나이는 그 사회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고안된 도구의 기능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래서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성숙함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한 인간의 나이 앞에는 인류가 살아온 모든 역사의 나이가 생략되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나이는 역사가 남긴 고전의 지혜를 얼마나 제 것으로 소화했느냐에 따라 주민등록상의 나이가 아닌 진짜 나이로 그의 얼굴과 언행에 묻어 나온다.
나는 옹졸해지고, 상상력을 잃어버렸을 때 종종 입으로 똥을 싼다. 고백하건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모순을 발견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어렵다. 그래서 굳이 입을 열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첨언은 그의 성숙을 돕기 위함 보다, 그의 모순을 보고 있는 것이 내가 불편해서였던 적이 많다.
언젠가 구분할 줄 알지만, 판단하지 않는 현명한 눈과 구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대나무 밭처럼 열린 귀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침묵하는 묵직한 입을 가진 매너 있는 내 얼굴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