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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Oct 05. 2021

주민등록증 앞에 붙은 나이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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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였지만, 남의 의견을 들을 줄 알고, 말하는 이가 범하고 있는 오류를 꼬집지 않으며, 그것을 여유롭게 쓰다듬어 주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한 아름으로 잡을 수 없는 100년 된 팽나무의 향기가 났다.


나이는 그 사회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고안된 도구의 기능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래서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성숙함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한 인간의 나이 앞에는 인류가 살아온 모든 역사의 나이가 생략되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나이는 역사가 남긴 고전의 지혜를 얼마나 제 것으로 소화했느냐에 따라 주민등록상의 나이가 아닌 진짜 나이로 그의 얼굴과 언행에 묻어 나온다.


나는 옹졸해지고, 상상력을 잃어버렸을 때 종종 입으로 똥을 싼다. 고백하건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모순을 발견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어렵다. 그래서 굳이 입을 열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첨언은 그의 성숙을 돕기 위함 보다, 그의 모순을 보고 있는 것이 내가 불편해서였던 적이 많다.


언젠가 구분할  알지만, 판단하지 않는 현명한 눈과 구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대나무 밭처럼 열린 귀와, 때를 기다릴  아는 침묵하는 묵직한 입을 가진 매너 있는  얼굴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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