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인챈티드>는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생일 때, 우리 집 인기 상영 1위에 빛나는 영화다. 뽀뽀신이 몇 장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정도다.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영화라 CG 기술이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여주인공도 예쁘고, 거인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니 아이들은 좋아라 한다. 영화 본 김에 책도 읽어보라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줬다. "뉴베리 수상에 빛나는~" 하는 멘트를 곁들여서.
엘라는 요정 루신다를 통해 '타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축복 아닌 축복을 받게 된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든 ‘명령형’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엘라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 모험을 떠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엘라는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는 새엄마와 언니들 때문에 하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여기까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고 여정을 함께 했던 왕자님이 슬리퍼 한 짝 덜렁 들고 나타난 것도 똑같다.
엘라를 찾아낸 왕자님은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인생역전, 지옥탈출, 행복시작의 바로 그 지점이다. 이때, 엘라는 자신이 왕자님과 결혼했을 때, 자신의 ‘복종 본능’ 때문에 왕자뿐 아니라 그의 왕국에 어려움이 닥칠 것임을 예상하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 그와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다.
왕자가 다시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명령을 내렸다. "엘라, 나랑 결혼해요. 어서 그러겠다고 말해요." 이런 청혼을 받으면 누구라도 좋다거나 싫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이건 왕자가 백성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었으므로. 샤 왕자는 자기가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못 하겠지.
하지만, 나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 명령에 복종하고 싶다. 하지만 왕자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왕자와 결혼하고 싶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내 조국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다. 그들이 위험에 빠지면 아무도 그들을 구해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졸지에 몰락의 길을 걷고, 모두 저주받는 운명이 되는 거다. (371쪽)
나는 케이크를 먹었고, 강장제를 마셨고, 목걸이를 해티에게 줘 버렸고, 새엄마의 노예처럼 힘겨운 일을 했고, 올리브가 나를 달달 볶는데도 묵묵히 당하고만 있었다. 비롯 나는 그들의 말에 꼭두각시처럼 복종했지만, 샤 왕자에게 해코지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 절대로. 절대로.
복종해. 그와 결혼해. 결혼한다고 말해. 결혼한다고 말해. 결혼한다고 말해. (372쪽)
샤 왕자는 엘라에게 자신과 결혼하자고 말한다. 자신과 결혼하라고 '명령'한다. 왕자의 청혼은 엘라가 원하던 일이다. 왕자의 명령에 엘라는 '복종'하고 싶다. '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엘라는 왕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시킬 것이다. 왕자를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엘라는 왕자에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엘라는 여러 번 자신의 저주를 끊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는 생일 케이크를 먹으라는 멘디에 말에 복종해야 했고, 엄마의 유품인 목걸이를 해티에게 줬고, 새엄마와 올리브의 모든 명령에 복종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와 강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랑하는 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No"라고말한다. 자신을 원하는, 자신이 원하는 단 한 사람, 바로 그 사람에게 "No"라고 말한다.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사랑은 현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이야기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부족한 것 없는 재벌집 아들이 어떻게 고시텔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가.
첫째, 여자가 예뻐야 한다. 이건 시간, 장소, 시대를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둘째,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어야 한다. 씩씩하고, 발랄하고, 명랑해야 한다. 셋째, 이제야 서로를 찾은 두 사람이 이 세상 하나뿐인 사랑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군의 태양>에서는 그 고리를 '귀신'으로 설정했다.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 내게 특별한 그 사람은 같이 있을 때 귀신을 쫓아주는 사람, '대리석으로 만든 방공호'이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사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이제 그 사람이 내가 좋다고 한다. 가지 말라고 한다. 태양(공효진역)도 주군(소지섭역) 옆에 있고 싶었을 거다. 안전하게, 편안하게 살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태양은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기 손을 잡고 (태양에게는 존재하는 귀신을) 안 보고, 안 들으면 된다는 주군에게, 그녀의 세상 한쪽 면을 포기하고 살라는 주군에게 태양은 말한다.
"어떻게 당신한테만 매달려서 살아요? 나도 내 세상이 있는데..."
주군에게 "No"라고 말하고 태양은 떠난다.
소지섭에게 "No"라고 말하고 공효진은 떠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날 원하는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이 세상 단 한 명의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에게 "No"라고 말한다. 나의 가장 절실한 "No"는 가장 사랑하는 사랑에게 말해져야 한다. 나의 가장 절실한 "No"는 내가 가장 원하는 그 사람에게 말해져야 한다.
그에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No"라고 말해야 한다.
"No"라고 해야 한다.
"No"라고...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