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에게 장미를

by 단발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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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에 수록된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에밀리에게 장미를: A Rose for Emily>은 1930년 3월 30일 자 포럼(Forum)에 발표되었고, 단편집 『이 13편』(These 13, 1931)에 수록된 작품이다. 에밀리의 장례 장면에서 시작해 그녀의 생애를 설명하면서, 에밀리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그려진다.



살아생전에 에밀리는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이자 걱정거리였고, 시장이던 싸르토리스 대령 ― 흑인 여자는 앞치마를 하지 않고서는 길거리에 나와서는 안된다는 포고령을 만든 장본인 ― 이 그녀의 세금을 면제해준 1894년의 그날부터 마을에는 일종의 세습 채무이기도 했다. (310쪽)



에밀리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녀에게 남겨진 게 집 한 채밖에 없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람들은 에밀리를 동정할 수 있어 오히려 기뻐했다. 그리어슨 가의 마지막 후예로 얼굴을 꼿꼿이 들고 다니던 에밀리는 몸집이 크고 얼굴이 검게 탄 북부 출신의 십장 배런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보석상에서 품목 하나하나마다 H.B.라는 은제 이니셜을 새긴 남성용 의복을 주문했음을 알고,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호먼 배런도, 에밀리도 사람들의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들락날락하던 흑인 하인의 머리가 점점 세어가고 등이 굽어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에밀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되었다 ― 소중하고, 피할 수 없고, 무감하며, 차분하며, 외고집인 존재로서. (321쪽)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로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되었던 에밀리, 온 마을 사람들의 걱정거리였던 에밀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층계 위쪽 닫혀 있는 방에서 사라졌던 그 남자, 호머 배런이 나타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난다고 할 때, 남겨진 사람,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 것이라 저주하며 말없이 고이 보내드려야 할까. 그의 바지를 부여잡으며 그의 앞길을 막아 서야 할까.


떠나기 직전 배런과 에밀리는 만난다. 두 사람은 이별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다름을 확인한다. 배런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어져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에밀리는 배런을 사랑하기에 잠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배런은 이제 그녀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와 헤어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런과 에밀리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즉, 배런이 에밀리를 덜 사랑했다거나, 에밀리가 배런을 더 사랑했다는 게 핵심이 아니다. 배런에게 에밀리와의 사랑은 ‘선택’이었지만, 에밀리에게 배런은 ‘절대’였다. 배런은 에밀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만, 에밀리에게 배런 없는 세상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세계일 뿐이다. 불행은, 배런이 자신을 향한 에밀리의 이런 간절한 열망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데서 시작되었고, 정확히 그 지점에서 끝난다.



애인과의 이별을 막기 위해 에밀리는 배런이 자신의 방에서 영원히 잠들게 한다. 에밀리는 배런에게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빼앗았다. 그녀의 계획은 성공했지만 그와 동시에 배런이 그녀를 사랑할 자유 또한 영영 빼앗아 버렸다.


결국, 에밀리가 빼앗은 것은 배런의 자유다. 그녀를 사랑할 자유. 그녀가 죽인 건, 연인 배런이 아니라, 한없이 그녀를 아꼈던 바로 그 사랑이다. 그녀의 삶을 가능하게 했던 사랑. 그녀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바로 그 사랑 말이다. 배런의 죽음으로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던 사랑도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배런을 소유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잠시 위로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백골이 되었지만 이제 이 남자는 나를 떠날 수 없을 테니까.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물 테니까. 하지만 자유 없는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습관처럼 살아갈 테지만 아무런 기쁨도 환희도 감동도 없다. 그곳엔 그녀가 바랬던 사랑이 없다.



에밀리에게 장미를 줄 일이 아니다. 아니다. 장미라도 주어야겠다. 사랑을 영영 잃어버린 그녀, 에밀리에게 장미를 준다. 사랑을 몰라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장미를 준다.


에밀리에게 장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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