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여성주의 고전을 차분히 ‘읽어준다’. 저자를 소개하고 배경을 설명한다. 여성주의 주요한 개념을 소개하고 해당 여성주의 고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하며, 여성주의 역사에 있어서 관련 도서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는다. 여성주의 연구자들이 한 명의 작가와 한 작품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모임의 텍스트로 사용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권의 번역본에서 『여성의 신비』라는 제목을 가졌던 베티 프리단의 『Feminine Mystique』은 2018년 다시 번역될 때는 『여성성의 신화』라는 제목을 가졌다. 이미 절판된 데다가 동네 도서관 6곳에서는 찾을 수 없어, 집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 버스를 타고 가서 ‘서고’에 보관된 책을 서고의 먼지와 함께 대출해 차근히 읽어나갔던 그 책,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 미리 구입해 두었던 『Feminine Mystique』과 함께 찬찬히 다시 읽었던 책. 두 번 읽었는데도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구매했던 책도 바로 이 책이다.
여성주의 책을 읽다 보면 베티 프리단의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자주 보게 된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스테퍼니 스탈에게 이 책이 그의 삶에 다시 울린 종소리 같았다면,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의 카트리네 마르살에게 이 책은 그의 논의를 전개하는데 주요한 지점을 건드려준다. (실제로 그는 베티 프리단의 책을 두 페이지 이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벨 훅스는 입장이 달라서 ‘백인 중산층 교외에 살고 있는 전업주부’만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의 한계와 단점을 아주 냉혹하게 비판하곤 했다.
베티 프리단이라고 하면 ‘이름 없는 문제’의 발견이 제일 주요하게 거론된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물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살고 있는 교외의 중산층 전업주부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들을 그녀는 ‘이름 없는 문제’라고 명명해 그 존재를 드러냈다. 여성을 어머니, 아내의 역할로만 한정 지어 인간으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와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가정이라는 이름의 감옥 속에서 억압된다는 주장이었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만연했던 ‘여성성’ 강요의 근거인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그녀의 반박이었다.
우리 시대 사회과학자들의 근거 중 일부인 다른 문화에 대한 지식,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이해는 프로이트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현대적 연구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던 많은 것들은 특정 문화에 근거를 둔 결과로 보인다. 프로이트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특질로 묘사했던 것들은 19세기 말 어느 유럽 중산층 남자와 여자의 특성일 뿐이었다. (『여성성의 신화), 215쪽)
신념이요, 법이며, 과학이며 종교인 프로이트에게 그녀가 대항했다. 대학 졸업자, 기자 출신의 전업주부. 프리랜서 자유기고가인 베티 프리단이 주장했다. 프로이트 이론 역시 프로이트가 살았던 현실과 문화의 영향과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명의 학자일 뿐임을 말이다.
토요일 저녁 늦게 영화를 봤다. 친구와 한 번 보고 와서 온 가족 같이 봐야 한다는 큰아이와 큰아이와 함께라면 어디든 행복한 작은 아이와 피곤한 남편과 아무 생각 없는 내가 나란히 앉아 <알라딘>을 보았다. 영화 제목을 잘못 지은 듯하다. 영화를 볼 때도, 보고 난 후에도 오로지 자스민 생각뿐이다. 영화 제목은 <자스민>이어야 했다.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이 귀에 들어가는 작은 이어폰을 끼고 (옆에 사람들은 음악 반주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어차피 영화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노래가 삽입될 텐데도, 열창한 탓에 눈 실핏줄이 다 터졌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여자가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 용기의 근원이 분노라는 사실처럼, 아주 확연히 눈에 보인다.
여자가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소리 지르는 여자가 되었을 때, 그녀/들의 외침이 성공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알베르 카뮈마저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출간되었을 때, 이건 ‘프랑스 남성의 수치’라고 했을 정도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책 출간 후 심한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성의 변증법』을 완성한 후 정신병원을 오고 갔고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유폐시켜 버렸다. 그에 비하면, 아니 페미니즘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베티 프리단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소리 내어 말했고, 그것이 사회적 의제로 받아들여졌고, 그녀의 책은 그러한 변화와 개혁의 발판이 되었다.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존경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그녀의 발언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쟈스민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생각한다.
더 많은 여성들의 침묵이 깨어지기를, 더 많은 여성들이 노래하기를.
쟈스민처럼, 베티 프리단처럼. 보부아르처럼, 파이어스톤처럼.
I won't go speech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