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Essay #1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5년 2월 1일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꿈' 하나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장래희망’란 1순위에 나는 항상 자동차 디자이너를 적었다. 어쩌면 단지 어린 시절, 현실과 타협하기 전 추억같이 적어 내리는 그 공간이 나에게는 정말 진지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 때부터는 줄곧 유학을 생각할 정도로 내 꿈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 당시 유학 관련 업체에 갔을 때 상담하시는 분들이 나에게 처음으로 물었던 질문은 항상 같았다. 부모님이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원이라는 뜻에는 최소 한 달에 백 단위가 넘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군대도 가지 않고 전문대 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빠듯하게 금, 토, 일 야간 알바를 하는 나에게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금액의 돈이었다. 정말 빠르게 좌절했고 꿈은 잠시 마음속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제대 후 전문대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IT 쪽 일을 줄곧 했었는데 흔히 말하는 ‘열정 페이’ 같이 마냥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나름 정말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날 때가 있다. 사실 잠은 거의 잘 수 없었고 자취방에도 잘 못 들어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보다 회사 생활은 즐거웠고 감사하게도 대부분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었다. 나이가 다른 분들보다 생각보다 너무 어린 탓에 직급이 올라가도 '막내'라는 타이틀이 항상 따라다녀서 항상 많은 배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에 할 수 있는 것들, 그 아쉬움이 남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후회 없는 20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와중에도 마음속에는 항상 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내 나이 28살에 다니던 회사와 주변인 정리를 하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 당시 친구가 "와 진짜로 가네"라는 첫마디가 아직도 가끔 기억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게 항상 머리에 맴돈다. '가난할지언정 꿈까지 가난해서는 안된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주변인을 정리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내 꿈은 가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죽겠다'라는 생각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극단적으로 인간관계도 단절해 버렸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의 가난함을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카톡 친구에는 항상 숫자 20을 넘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의지 덕분인지 나는 지금 감사히도 독일의 대학에서 졸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졸업 겸 취업준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산을 넘었고 이제 그 다음 산 뒤에 있는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 하루도 불안한 마음 속에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