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Essay #2
"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내가 처음 베를린에 와서 독일어 기초반 수업에 참여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나는 그날 그 대답에 대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격적이게도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은 그 대답을 못한다고 강요하거나 끝까지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질문에 답을 준비 중인 학생은 아직 14명이나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이 단순한 질문에 정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내 색깔을 모르게 되어 버렸다.
19살 고등학교 졸업 직전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은 카드 공장 일이었다. 우체국 지하에는 굉장히 넓은 부지의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 당시 평균 시급은 내 기억에 대략 2310원이었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시급이 5000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당시 대학 입학금 350만 원을 정말 어렵게 마련한 상태였고 그 이후의 비용에 대해서는 모든 걸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한 푼 한 푼이 정말 간절한 상황이었다.
사실 공장의 일은 단순했다. 컨베이너 벨트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카드가 밀려 들어오고 나는 그 카드를 재빨리 봉투 하나하나에 담아 붙이고 대차에 싣는 일을 배정받았다. 아마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의 형태로 진행이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았던 나에게 이 일은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일보다는 사람 관계가 정말 힘들었다. 나는 그 당시 소심해도 너무 소심한 학생이었고 사람들의 너무나도 거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사람들과 말할 용기조차 나지 않고 하루하루 일은 너무 가기 싫었다. 결국 너무 힘이 들어 자주 다니던 슈퍼마켓으로 가 심부름을 위장해 소주를 한병 사서 출근하면서 한 번에 전부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서히 취해갔고 술을 빌어만든 마음속의 용기는 나의 소심함을 덮어주었다.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굉장히 크게 '안녕하세요'를 두 번 연달아 외쳤고 아침에 커피를 마시던 그 많은 수의 직원분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 당시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던 소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신기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 한 명 한 명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더욱이 놀라운 건 그날 아무도 나에게 추궁하지 않았다. 아마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술에 취해 일을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사히 일을 마치고 그날 저녁 무렵 옥탑방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동생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이 공간은 내가 처음으로 가장 행복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비록 아무것도 없는, 셋이 누우면 공간이 꽉 차는 옥탑방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할 만큼 나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고 내가 삶에 이유를 찾은 것이 아마도 이 순간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야겠다는 이유와 함께 나 스스로의 색깔을 지우고 사회에 맞춰 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렇게 28살 추운 겨울 2월부터 나는 독일에서 스스로가 외면해 버렸던 나의 색깔을 다시금 찾아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색깔을 넘어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단단해져 가는 나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