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사용법

Germany Essay #13

by 후니
Brunch_00.jpg Starnberg See


독일의 주말은 항상 여유가 넘친다.


예전에는 주말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평일에 못 끝낸 일을 마저 하거나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주말에도 일을 한 셈이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 없이 일만 하느라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말에 뭐 할 거야?”


매주 금요일쯤 되면 외국 친구들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예의상 묻는 질문인 줄 알았다.


“그냥 집에 있을 거야”


독일에 온 뒤로는 “그냥”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데, 아마 이런 순간에는 항상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그때마다 왜 집에만 있느냐고 다시 묻곤 했고, 가끔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반대로 종종 내가 물어볼 때면 그들은 항상 계획이 있었다. 거창은 계획은 아니더라도 나름 주말을 위한 자세, 혹은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은 주말이 되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바쁘고 조밀했던 평일과는 다른 리듬이 주말엔 존재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주일하루, 보통 토요일은 꼭 밖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멀리 여행을 가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자니 못내 아쉬운 그런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들이 그렇게 주말 계획을 묻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왜 평일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주말은 더 이상 회사의 시간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말에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주말은 더 이상 나 자신은 회사의 소유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말에 정말 본연에 자신의 시간을 보낸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시간을. 그 시간을 통해 힐링하고,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법을 배운다. 나도 어느새 그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그러다 보니 평일의 삶은 더 전투적이 되었다. 주말을 온전히 쉬거나 글쓰기 같은 취미를 위해 평일에는 더 집중하고, 더 열심히 움직인다.


그렇게 분주하게 보낸 평일이 지나고, 소중한 주말이 찾아왔다.


나는 뮌헨 중심지에서 가장 가까운 Starnberg 호수와 주변 산길을 걸었다. 기차로 대략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라서 준비도 번거롭지 않았다. 뮌헨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호수가 있는 역에 내리면 그 순간부터 공기의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도심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사라지고, 호수 바람이 묻어 있는 선선하고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Brunch_01.jpg Starnberg Station


나는 역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시내 쪽으로 가지 않고,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 숲으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집집마다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담벼락에는 장미나 덩굴 식물들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런 길을 몇 분 걷다 보면, 어느새 발밑은 흙길로 바뀐다.


오늘은 유난히 더웠다. 해는 높이 떠 있었고, 그늘이 아닌 곳은 따가울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기온은 35도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 몇 걸음은 괜찮았지만, 걷다 보니 등에 땀이 흐르고, 숨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그럴수록 나무 그늘이 더 반가웠다. 산책길 옆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터널처럼 이어져 있었다. 가끔씩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숲 속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딱 그 중간의 명암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기는 정지된 듯 조용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렸다.


Brunch_02.jpg Starnberg See ->Maisinger See 가는 산책길


아쉽게도 완전히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작은 벌레들이 많았다. 팔다리를 몇 번이고 물렸고, 간지러움을 넘어서 따가울 정도였다. 특히 한 두 번은 물린 자국에서 피가 날 정도로 깊게 물렸다. 이런 산책로에서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호수와 가까워 습기가 많은 탓인지, 숲의 밀도가 높아서인지 벌레들이 활발했다.


중간쯤 이르러 준비해 온 커피와 빵을 꺼내 잠깐 쉬어 가려고 마땅한 자리를 찾아 바위 위에 앉았지만, 벌레들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벌레들이 더 들러붙었다. 이럴 땐 애써 여유를 부리기보다 다시 걷는 편이 낫다.


"아 벌레들이 선 넘네"


결국 나의 소중한 피부를 위해서 먹기를 포기하고 코스를 수정했다. 원래는 조금 더 오르막이 있는 코스를 생각했지만, 오늘은 낮은 길과 평지를 중심으로 걸었다. 큰 풍경을 보는 대신, 길가에 핀 야생화나 나무의 텍스처, 바닥의 돌길 같은 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이런 길이 더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걷다가, 결국 호수까지 돌아서 내려갔다. Starnberg 호수는 늘 잔잔하다. 바람이 불어도 큰 파도는 생기지 않고, 물결이 조용히 흔들린다. 그 옆에는 잘 정돈된 벤치가 길을 따라서 배치되어 있고,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식사는 간단했다. 집에서 챙겨 온 샌드위치와 커피, 과일 몇 조각.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호숫가에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있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있었고, 혼자 온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물속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Brunch_03.jpg Starnberg See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고, 오랜만에 시간을 억지로 보내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는 시간. 자연스럽게 머릿속도 비워졌다. 점점 오후로 접어들 무렵,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역 쪽으로 걸어갔다. 돌아가는 길은 아침보다 덜 상쾌했지만,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오늘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줄어든 플랫폼, 햇살 아래 고요한 들판, 느리게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 그 모든 장면들이 조용히 마음속에 남았다.


이런 주말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곧 잊히곤 한다. 하지만 그 여유와 질감은 확실히 어디엔가 남는다. 그리고 그게 일주일을 다시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아마 다음 주말에도 다시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이다. 목적이 뚜렷하진 않아도, 그저 걷고 싶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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