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는 이탈리아 빨래 널린 거리에서 가장 빛났다.

Germany Essay #12

by 후니

국제 공모전 수상 이후, 2023년 1월 나는 이탈리아의 페라리를 디자인했던 회사에서 6개월간 인턴십을 할 기회를 얻었다.


사실 수상은 2021년 여름이었지만, COVID-19로 인한 출입 제한 정책 때문에 인턴십은 무려 1년 반이나 미뤄졌다. 유럽에 거주 중이었지만 유럽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되었고, 독일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다시 비자를 받아야 했다. 비자 준비만 1년 가까이 걸렸고, 마침내 토리노 외곽의 작은 마을 캄비아노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영어도 부족했고, 이탈리아어는 인사말조차 몰랐다. 회사에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대부분의 직원은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했다. 회의는 종종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었고, 외국인 디자이너들은 회의가 끝난 뒤 영어를 할 수 있는 동료에게 하나하나 다시 묻는 게 일상이었다.


background_004.jpg 회사 기숙사가 있던 작은 도시 몬카리에리(Moncalieri) 언덕에 올라 바라본 알프스


캄비아노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이탈리아의 자동차 풍경은 매일 새로웠다. 독일과 멀지 않지만, 훨씬 다양한 차들과 오래된 클래식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저녁이면 이탈리아 특유의 노랗고 하얀 가로등이 도시를 환하게 밝히고, 그 아래선 모든 차들이 유독 아름답게 빛났다.


독일의 저녁 불빛은 앉아서 술 한잔 하기에 좋은 분위기라면, 이탈리아의 불빛은 걷고 싶은 거리의 빛이다. 재미있는 건, 이탈리아 사람들은 포르쉐가 지나갈 때 유독 눈길을 더 주고, 독일 사람들은 페라리가 지나갈 때 더 고개를 돌린다는 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관찰이지만, 흥미로운 차이였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더운 여름날 토리노의 허름한 고층 건물들 사이를 걷다가 마주한 순간이었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널려 있었고, 그 사이로 빨간 페라리 한 대가 지나갔다. 그 풍경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치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알록달록한 물감 위에 한 점의 선명한 붉은색을 콕 찍어놓은 듯한 장면이었다. 왜 디자이너들이 ‘도시 위에서의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하는지, 그때 다시금 이해했다.


실제로도 직접 보고 관찰한 자동차 중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브랜드는 페라리였다. 페라리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조각품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디자인 그 자체였다. 회사가 어려워도 디자이너들이 월급을 깎아가며 일한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질 만한 브랜드였다.


이제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새로운 여정을 앞두고 있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풍경과 감정이 내 기억 속에 남게 될지, 조용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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