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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탈락

예비예비신부 1

—베드로 형제님? 성소국입니다.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신부님들이 판단하기에, 베드로가 탈락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허리 디스크로 기숙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둘째는 경험 부족입니다. 어떠한 유혹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그걸 이겨내리라는 확신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경험 부족이요? 허리 디스크는 1년 정도 관리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경험은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내년에도 지원하지 말라는 말씀이신가요?"


—... 네. 뭐, 입학 나이 제한인 서른 살까지 사회를 겪어보고 '그럼에도 신학교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그럼 다시 지원해 보세요. 그런데 그때 지원한다고 합격할 수 있다는 확답은 못 드립니다.





통보를 전함으로 목적을 다한 전화가 끊길 때, 나의 길도 함께 끊겼다. 성당에 있는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양성되는 예비신부, 그런 신학교에 가기 위해 주기적으로 면담과 식별을 거치는 예비예비신부. 신부님이 되고 싶어 10여 년을 그 길 위에서 살아온 나인데, 그런 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의 진심을 서울 대교구 성소국에서는 알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최장수생이었던 내게 '교구장 추천 전형'으로 지원하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서울에 있는 모든 사제들의 총장이 나를 추천해 준다는 것은 사실상 합격이라는 말이었다. 긴 시간을 함께했던 성소국에서는 내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정과 배려를 해준 셈이다.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 온 부모님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돌고 돌아서 이제야 시작할 수 있겠구나.'부터 시작해서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네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까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목소리에 녹아있었다. 서로 기뻐하는 이유가 조금 다른 듯했지만, 뭐가 중요할까? 내겐 10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 기뻐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기쁘게 몸도 마음도 하나씩 신학생이 될 준비를 해나갔다.


분명 그랬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통보를 받았다. 결격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합격이라는데, 떨어졌다. 경력직을 뽑는 회사가 아닌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경험 부족으로 탈락했다. 고3 수험생도 들어가는 신학교의 문턱에 걸려 거하게 넘어진 것이다. 어떤 경험이 더 필요했던 걸까? 아니, 나는 어떻게 살았어야 했던 걸까?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신이 실재하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신이 있다면 왜 내게만 유독 실패를 거듭하게 만드는지 묻고 싶었다. 매번 부족함을 느끼게 만들면서도 왜 사제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놔두지 않는지도 미치도록 궁금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국 사제의 길 위에서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고 싶었다.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뿐이었는데, 기회조차 오지 않고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번데기라 생각했다. 수차례 쌓여가는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아가며 나비가 되는 날만 꿈꾸며 길고 긴 시간을 버텼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나비가 아니라 매미였다. 이제 시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끝이었던 매미.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옆에 가서 슬그머니 앉았다. 엄마 나 떨어졌대. 신학교에서 나 안 받는대. 허리가 아파서, 경험이 부족해서 인정 못 한대. 분주하던 손이 멈추고 곧이어 귓가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쉽지 않네. 정말, 쉽지 않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엄마의 손을 잡는 것밖에 못 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던 사람들은 그 길 끝에 저마다의 문에 다다랐다. 어떤 이는 뜻하던 대로 사제가 되어갔고, 어떤 이는 사회인이 되었다. 같은 곳을 보고 걸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길 위에 남아있는 건 나뿐이었다.


통보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신경 써주셨던 신부님을 찾아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동안 가만히 듣던 그는 꽤나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베드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좋은데 한 가지 알았으면 하는 건, '사제성소'라는 건 붙잡고 있지 않는다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어. 그걸 놓고 싶은 거니?"


놓고 싶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두드리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일은 그만 겪고 싶었다. 뭘 해도 잘했을 나를 더 이상 썩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놓고 싶지 않았다. 성당이라는 곳에서 받은 위로를, 그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그걸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삶에 의미가 생길 것 같다는 확신은 여전히 있었다.


스무 살, 여권에 잉크도 안 마른 나이에 혼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이렇게 포기는 못 하겠다. 서울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다른 지역을 가서라도 사제가 되고 싶었다. 신학교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수도원에 들어가더라도 답을 찾고 싶었다. 걷는 동안이 아니라 완주 후에야 시작되는 순례길처럼, 내가 10년간 걸어온 이 길의 끝을 보고 싶었다. 몸집만 한 배낭보다 더 무거운, 지나온 순간의 모든 선택들을 짊어진 채로 다시 한번 걸어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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